2. 독창성과 작품성 

이익을 잠식하는 패턴

1969년 마리오 푸조가 발표한 《대부》는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60년대에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의 하나가 되었다. 《대부》는 훌륭한 역작이다.

이 소설이 단순히 한때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진짜 대히트작임이 분명해지자, 뉴욕의 모든 편집자들은 이곳저곳의 에이전시를 찾아다니며 모두가 판에 박은 듯 “마피아에 관해 쓴 작가는 없는가” 하고 묻곤 했다.

웬만한 에이전시에서는 자기들이 확보하고 있는 작가의 리스트를 찾아보았는데 마피아를 테마로 해서 이미 작품을 쓴 작가나 이제부터 쓸 만한 작가가 물색되지 않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안됐습니다” 하고 답변했다.

명성 있는 에이전시에서는 자기들이 확보하고 있는 작가에게 이제까지 시간을 주어 집필하게 하던 작품을 도중에서 그만두게 하고 일시적인 유행을 좇는 작품 따위를 쓰게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생명이 오래가는 작가를 키우려고 애쓰고 있으며, 벼락치기로 만들어 낸 작품에서 얻어진 돈은 자신에게도 해를 끼치게 되어 길게 본다면 결국은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느 작가에게 어떤 종류의 작품일지라도 요구에 따라 즉석에서 쓸 수 있는 재간이 있다고 하는 사실이 편집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손 치더라도, 그로 해서 그 작가의 예술가적 혹은 직업적인 명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즉 편집자는 그를 기용하게는 되지만 그것은 매달 출판 리스트의 말미나 중간 부분쯤을 메우기 위한 것이지 결코 온 힘을 기울여 밀어 주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젊은 시절, 아직 세속에 어두었을(--> 어두웠을)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몇 해 동안은 이 함정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후에 나는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만을 쓰려고 작정했지만 소위 편리한 팔방미인이라는 이미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맛봐야만 했다. 그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하게 될 때까지 실로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절대로 옛날로 되돌아가지 않고 필사적으로 좋은 작품만을 쓰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이름 있는 에이전시가 자기네의 작가에게 마피아 소설을 쓰게 하지 않으려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개의 성공작은 작가 자신의 창조력과 누를래야 누를 수 없는 강한 표현 욕구에서 탄생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권유에 의해 씌어진 작품, 작가 자신의 깊은 정신적 근거에 바탕을 두지 못한 작품은 그렇지 않는 작품에 비해 틀림없이 질적인 면에서 떨어진다.

그런데 대개의 이류 또는 삼류 이이전시에서는 이런 점을 알아차리지 못할뿐더러 무시해 버린다. 목적은 오직 재빨리 돈을 버는 것뿐이다. 그들에게는 자기들이 확보한 작가를 장기간에 걸쳐 성공할 수 있도록 돌봐 줄 능력이 없고 그러한 바람도 갖고 있지 않다. 편집자가 《대부》의 모작을 탐내면 이들 에이전시들은 자기네의 작가들에게 마피아 소설을 쓰게 한다. 그러한 작품의 대부분은 따분하고 도저히 읽히지 않는 졸작들뿐일 때가 많다.

편집자는 푸조를 흉내 낸 소설을 요구하는 한편 과거의 출판 리스트를 샅샅이 뒤져 조금이라도 조직범죄와 관계가 있을 듯싶은 작품을 찾게 된다. 그러고는 장정을 바꾸어 그것들을 푸조의 걸작을 읽은 바 있는 독자의 코앞에 들이댄다. 책 표지에는 “《대부》를 능가하는 작품”, “《대부》보다도 강렬”, “이 책 앞에서는 《대부》도 무색”, “《대부》가 이보다도 더 스릴이 있겠는가” 라고 쓴다. 이 따위의 리바이벌물들은 거의가 다 마피아를 악한으로 다루고 있는 스릴러물이다. 푸조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커다란 전망이나 테마적 야심의 조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중 몇 편은 잘된 오락 소설이기는 하나 목표에서 너무나 빗나간 작품일 뿐이다.

이들 모작(模作)은 대부분 표지 디자인까지 《대부》와 비슷하다. 개중에는 그대로 복사된 것같이 흡사해서 언뜻 보기에는 푸조가 쓴 것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도 있다.

《대부》의 페이퍼백 출판권을 따낸 퍼셋 사는 아주 흡사한 디자인의 마피아 소설 페이퍼백을 대량으로 출판했다.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대부》를 낸 출판사가 선보이는 마피아 시리즈.”

퍼셋 사의 속셈은 이렇다.

“우리는 푸조의 작품을 낸 출판사다. 그만한 안목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내는 마피아 시리즈는 다른 출판사의 것보다도 10배나 뛰어나다.”

물론 그것은 거짓말이다. 퍼셋 사는 다른 출판사와 비슷한 정도의 모방품을 낸 데 불과하다.

한편 같은 무렵, 랜서 북크스 사는 푸조가 《대부》보다 앞서 발간했던 작품들을 다시 냈다. 디자인을 그대로 본뜨고 표지에서는 《대부》의 전편이나 후편인 듯한 인상을 풍겼으나 실은 전혀 다른 작품이었던 것이다.

진짜 피해

이와 같은 경향이 확대된 결과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됐는가.

우선 초기에는 푸조의 모방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푸조의 작품에 매력을 느낀 독자들이 이들 모작에 같은 질의 경험을 기대하고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이런 초기의 성공에 신이 나서 점점 더 많이 마피아물을 출간해 낸다.

결국에 독자들은 몇 번씩이나 실망감을 맛보게 되자, 보다 적절한 표현으로는 먹이가 되자, 비슷한 커버가 씌워져 있더라도 안의 내용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마피아물을 더는 사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쯤에 마피아물의 출판 건수가 최고에 달하게 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태반의 출판사는 이러한 붐이 영원히 지속될 줄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독자를 잃고 말 것이 뻔한 싸구려 모작을 계속 출간하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출판사의 창고에는 수백만 부에 이르는 각종 마피아물의 반품(책이라고 하는 상품은 다른 것과는 달리 팔리지 않으면 고스란히 출판사에 반품할 수 있다)이 산적하게 된다. 심한 경우 반품률은 60~70퍼센트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 처음에는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준 모작도 이쯤 되면 거대한 적자를 내고 만다.

그리하여 그 후로는 이따금 출간되는 상당히 질이 높은 마피아 소설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사멸되고 마는 것이다. 그와 같은 괴멸은 돌발적이고도 철저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익의 잠식 패턴은 출판계에서 이미 몇 번이나 되풀이 되어 왔다. SF는 몇 번씩이나 붐과 침체의 사이클을 거쳤는데 침체를 초래케 한 최대의 원인은 언제나 싸구려 SF의 범람이었던 것이다. 1960~70년대에 인기가 있었던 고딕 로망도 돈을 노린 수 백 종에 이르는 조잡한 책의 난발로 결국은 사멸되고 말았다.

그런데 흉내를 내더라도 초기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경향은 그다지 중대한 문제는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확실히 초기에는 성공을 한다. 하지만 일단 독자가 깨닫게 되면 흉내 낸 책들은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준다. 더욱더 고약한 것은 조잡한 모방물이 나돌기만 하는 독서 시장에서는 진지한 작가의 작품이 인정받기 힘들다고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무슨 대책은 없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출판사가 남의 뒤를 쫓는 돈벌이를 목표로 작품을 출판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공포 소설이 인기라면 편집자는 이류 작가에게 모작을 쓰라고 하기보다는 우수한 작가에게 야심적이고도 완성도가 높은 공포 소설을 써보도록 권유하는 편이 낫다. 유행을 뒤좇는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만약 출판사가 새로운 경향을 조심성 있게 이용하고 싸구려 모방을 피하며 그 경향에 따른 양질의 신선미를 지닌 작품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다면 붐과 침체의 사이클을 피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어떤가?

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게 되면 그것을 조심성 있게 이용하려고 하는 양심적인 출판사가 반드시 나타난다. 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그것을 계기로 한밑천 잡아 보려는 계산에서 그때뿐인 조잡한 내용의 작품을 재빨리 내놓은 출판사가 언제고 다수 나타나는 법이다. 이러한 출판사가 성공을 거두게 되면 자제하고 있던 출판사들도 차츰 자기네 출판사의 방침에 회의를 느껴 마침내는 막차를 타지 않으려고 다량의 모방 작품을 수없이 출간하게 된다.

출판은 지극히 경쟁이 심한 업종이다. 이 경쟁이야말로 출판 사업의 최대 활력소인데 이제까지 언급해 온 것과 같은 과다 경쟁은 훨씬 커다란 마이너스 효과를 낸다.

안이한 모작을 써서는 안 된다

작가의 경제적 안정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 붐과 침체의 사이클을 피하기 위해 신인 작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간단하다. 절대로 흐름에 휘말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고 다른 작가들을 흉내 낸 싸구려 모작을 써서는 절대로 안 된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분야라는 이유만으로 역사 대하소설을 써서는 안 된다. 그 방면의 소설을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작가로서도 그 형식에 매력을 느꼈을 경우에만 쓰도록 해야 한다.

스티븐 킹이 한 재산 일구었다는 이유만으로 공포 소설을 써서는 안 된다. 공포 소설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전달하는 가장 알맞은 형식이라고 진실로 느꼈을 때에만 공포 소설을 써야 한다. 자신이 흥미를 가질 수 있고 또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장르의 소설을 쓸 때 약간의 행운과 얼마만큼의 재능과 참을성 있는 인내심으로 하여 마침내는 베스트셀러를 낳을 수 있고, 자기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독자성으로 밀고 나가라. 그렇게 하면 더 많은 돈을 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작품은 비평가라든가 편집자 또는 독자들에게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 《베스트 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 (원제: How to write bestselling fiction)》/ 딘 쿤츠. 문학사상사. 1996. 227-232 p. -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가 거의 10년 전입니다. 당시에는 작가의 성향이나 독자의 (새로운 흐름이나 유행을 찾는) 쏠림현상, 시장의 판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문장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쿤츠가 경고하는 현상을 2005년에서 2006년에 걸쳐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될 줄이야.

작가가 말하는 미국의 출판시장과 우리나라의 게이 로맨스계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작가의 권리를 보호하며 출판관련 일을 대신하는 에이전트는 물론 정식 출판사와 좋은 혹은 나쁜 편집자도 없습니다. 그러나 임신수라는 새로운 장르가 나타나 크게 히트를 치자 게시판 곳곳에 “임신수가 나온 어떤 작품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비슷한 유형의 작품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독자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대부》가 히트를 치자 마피아관련 작품을 출판하길 원하는 편집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호응하듯 임신수를 다룬 작품이 한 권, 두 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잘 된 작품도 있고 형편없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작보다 졸작의 수가 훨씬 많았으며, 이들 작품의 범람으로 독자는 옥석을 가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설사 착상이 좋아서 소설에 이용할 만한 것이었다 해도 다른 작가가 먼저 소설화해 버리면 다음 사람의 작품이란 재탕일 수밖에 없다. 수년 전 각 신문과 잡지는 앞을 다투어 뉴욕 쌍둥이 의사의 죽음에 관해서 보도한 적이 있다. 그 쌍둥이의 죽음의 과정은 아주 기괴했는데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들 형제간의 관계와 가정 생활이 얼마나 병적으로 비정상적이었고 끔찍스러웠는가를 온 세상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건은 많은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소설로 씌어졌지만 성공을 거둔 작품은 오직 하나, 제일 처음에 출판된 배리 우드와 잭 기슬란드가 함께 집필한 《쌍둥이》뿐이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쥬디스 로스나의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가 있다. 이것은 쇼킹한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런데 실은 다른 작가들 역시 이 사건에 주목하여 작품을 썼지만 전연 팔리지 않았다. 그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미스 로스나보다 늦게 출판한 데에 있었다.

- 중략 -

스리마일즈 섬에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직후 스무 명이 넘는 작가가 원자력 발전소로 인한 재해에 얽힌 작품을 썼다. 사건 발생 이후 홍수같이 범람한 조사 보고서며 그칠 줄 모르는 텔레비전뉴스와 특별 방송에 지쳐 버린 대중에게 그 책을 또 팔아 넘기려고 했으니 어느것 하나 성공할 까닭이 없었다. 스리마일즈 사건에 간신히 편승할 수 있었던 것은 - 그나마 우수작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 《차이나 신드롬》이라는 영화 정도였고, 그것도 우연히 사건 발생 당시 개봉되었기 때문이다.

- 《베스트 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 (원제: How to write bestselling fiction)》/ 딘 쿤츠. 문학사상사. 1996. 43-44 p. -

독창성과 작품성은 작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입니다. 임신수를 다룬 작품의 경우, 2004년까지 발행된 네 편의 작품 - 《마후》, 《흑무를 손에 쥐다》, 《바람의 정원》, 《황금악어》- 은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 네 작품은 소재만 비슷할 뿐 설정이나 시대배경, 줄거리, 작품의 흐름이 독창적입니다. 작품성 또한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2005년부터 나온 작품은 작가 스스로 독창적이라 생각해도 독자들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벨과 그레이와 전화기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레이는 벨보다 먼저 전화기를 발명했지만 2시간 늦게 특허를 신청하면서 특허를 뺏겼습니다.) 비슷한 기간에 아이디어를 떠올려도 발행이 늦으면 읽는 사람에게는 재탕일 뿐입니다.

지금 게이 로맨스계에 불고 있는 임신수 열풍은 쿤츠가 예견한 “초기에 성공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어리석지 않으며 나중에 식상할 단계에 이르면 좋은 작품도 읽지 않습니다. 작가 스스로도 유행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 기간 준비한 괜찮은 작품을 쓰는 것인지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후자가 아니라면 작가 자신을 위해서도 집필을 그만두길 바랍니다. 어설픈 아류작은 이류작을 만들어내는 지름길일 뿐만 아니라 작가의 가치도 떨어뜨립니다.

소재가 독창적이지 않더라도 작품성이 있으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감수성과 개성이 돋보이고 완성도가 높으면 됩니다. 비슷한 소재에서 작가만의 특징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독창적인 집필방법입니다. 독자들 또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식견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