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G》의 오류

일회성 출판으로 그치는 동인 시장의 특성상 희귀본은 있을지언정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는 나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작가의 역량이나 작품성을 판매량과 일치시킬 수 없습니다. 대신 중고 시장에서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합니다. 《G》는 제가 판단한 작품의 수준과 시장의 논리가 맞지 않는 유일한 작품으로, 내용의 문제점과 설정의 오류를 이번 장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길고 긴 육욕의 시간이 지난 후 샨은 눈을 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황을 기억해 냈다. 이곳은 전장이라 아무도 그를 지켜 줄 수 없었다. 류와는 낮의 전투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류가 그의 곁에서 멀어진 시점에서 비쉬들은 잔인한 육식동물이(--> 육식동물로) 변해 그를 집단적으로 잡아먹었다.

- 중략 -

왠지 눈물이 났다. 라쉬로서 강간당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가디언으로서 입대하자마자 그 상급자를 비롯해서 페어를 짰던 비쉬들에게 언제나 당하던 일이라 육체적 고통 말고는 그다지 고통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제의 그 짐승들은 자신에게 가장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흔적을 남겼다. 행위 중 사내들이 먹였던 그 약은 시하임(번식을 위한 임신 촉진제)임이 틀림없다.

가디언들은 최고 군인인 만큼 우수한 인간들만 선발된다. 그 우수한 유전자들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전투에서 죽어버리는 손실을 염려한 정부는 남성도 임신할 수 있게 만드는 약 ‘시하임’을 개발했다. 생존만큼 강한 욕구로 식별되는 성욕은 죽음으로 인한 공포로 미쳐 버린 인간들을 지배하고 그 아래에서 라쉬들은 희생된다. 군인이면서도 여성의 역할을 강요받는 라쉬들은 반 미쳐버린 비쉬들에 의해 강제로 약을 복용한 뒤 몸 안에 가득 찬 정액과 자신의 피로 생명을 만들어낸다. 지금 샨의 몸 안에 남아있는 수십 명이나 되는 남자의 정액과 그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는 그 누구보다 강한 생명체를 만들어 내겠지만 그 모태가 되는 샨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 먹을 것이다.

- 《G》/ 타쿠. 67 p. -

‘녀석의 뱃가죽을 찌르는 순간 희열이 느껴졌다. 애새끼를 배서 부풀어 오른 배를 감싸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꼴이 우스웠지. 그래서 그 배를 칼로 난도질했다. 뱃속의 애새끼가 네 핏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고통 없이 죽여 줬을 텐데...멍청한 놈이었어.’

- 《G》/ 타쿠. 161 p. -

남자의 출산은 여자의 출산과 달라서 4개월의 수태기간이 지난 후 일시적으로 생긴 가랑이 사이의 비문으로 태아를 내보낸다. 그 비문이 생기는 과정 역시 고통스럽지만 여성의 10개월 만에 출산하는 태아와 똑같은 크기의 아이를 4개월 만에 뱃속에서 길러서 그 조그만 구멍으로 출산해야 하는 것이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 《G》/ 타쿠. 171 p. -

본문에서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내용상의 의문점은 샨이 임신한 아이는 누구의 아이인가 하는 점입니다. 분명 샨은 류와 헤어진 상태에서 강간을 당하고 임신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나오는 문장에서 샨은 아이가 류의 아이라고 말합니다. 샨이 임신한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작품에는 명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설정상의 오류는 군인 계급의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 남성도 임신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일견 타당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반대로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에는 대책이 없습니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SF의 핍진성으로 자리 잡은 로봇 공학 3원칙을 생각하시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로봇이 자의식을 갖고 반항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 인간의 노파심입니다.

작품 중반에 반란군이 가디언의 클론을 만들어 정부군과 대치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의 과학이 클론을 만들 수 있을 정도라면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강제적이고, 자연적인 임신으로 번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총구를 반대로 향할 가능성이 높은 하위 계급(군인계급)의 우성 유전자를 적절한 제어장치 없이 남기는 것은 체제 전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원래 정부군이었던 류 또한 반란군을 돕습니다. 갓난아이 임에도 부모의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나 어른도 쉽게 접근 못하는 류의 아이가 자라서 반란군 편을 들 것도 자명한 일입니다. 군의 특성 자체가 집단으로 움직이는 상명하달의 조직임을 생각하면 지배계급에서는 오히려 이들에게 적절한 제어장치를 하고 유전자를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SF에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인종을 일부러 단종시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대충 생각나는 작품만 해도 다섯 손가락을 넘습니다.

1. 《혈맥》의 가디언

“당시 황실 유전자은행 책임자였던 자그룰라 모렌 박사의 지휘하에 가디언 유전자에서 가능한 모든 우수한 조합을 총동원해 총 사십 만개의 강력한 수정란을 제조해냈습니다. 모두 훌륭한 Y유전자를 지닌 남성이었고 일부 잘못 합성되어 XX가 된 것은 폐기처분되었습니다.”

“폐기?”

수우가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하지만 원래부터 가디언은 남자만 합성되어 왔던 것이 당시의, 아니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관례였다.

이렇게 인위적인 단성화(單性化)와 강제적인 거세조치는 가디언 사이의 혼인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강력한 인종’이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어찌 보면 당연한 현 세대의 선택이기도 했다.

- 《The iron vein 1권》/타사우프. 135-136 p.-

좋은 유전자 풀에서 인위적으로 태어나 육체적인 능력은 월등하지만 “새롭고 강력한 인종”의 탄생을 두려워한 지배계급에 의해 정식 가디언이 되면서 생식기를 제거합니다.

2. 《아이노쿠사비》의 이아손

일반적으로, 타나그라에선 엘리트는, 안드로이드와 구분하기 위해 모두 장발이었다.

발란스한 프로포션(體型), 지적인 마스크(美貌). 그러나 IQ 300이상으로 개발된 두외 외에는, 생식 능력도 가지지 못한 인공체인 엘리트들.

- 《아이노쿠사비 (원제: 間の楔)》/ 요시하라 리에코. 47 p. -

눈부신 미모에 아이큐 300의 두뇌를 갖고 있지만 자아가 있는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이아손은 인공체로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3. 《Bohemian Rhapsody》의 전설적인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정신병원의 정체를 알았다. 사미 족에 전사의 피가 흐를 것을 두려워하는 오만한 연방 놈들이 단종 수술(斷種:정소제거수술)을 하는 곳이지.>

- 《13 1권》/ 스탠. 249 p. -

사미족의 전사의 피를 두려워한 연방이 반항하는 자들을 정신병원으로 데려와 강제적으로 단종 수술을 행합니다.

4. 《스타워즈》의 제다이

제다이는 수천년전인지 수만년전인지 여하튼 무지막지하게 긴 역사를 지닌 공화제에서 유일하게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사집단이다.

- 중략 -

그들은 결혼하는 것이 허락되어있지 않고 평생을 오로지 공화국을 위해 바쳐야 하는 전사들이다.

- 《dream-morpheus》/ 에크. 436 p. -

제다이 전사는 생애는 중세의 수도사와 비슷합니다. 수련과 훈련을 거듭하며 검소와 봉사를 실천합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무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군사집단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일생 결혼하지 않는 습관 때문입니다.

5. 《개미지옥》의 합성체

더욱 큰 문제는 합성체들도 생명이었던지라 번식에 대한 욕구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여성체(女性體)를 만들 수도 성적인 능력을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성체를 만들 경우, 그들의 무서운 번식력은 어쩔 것이며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난 그들의 후손들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에 그 무모한 시도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 《Walking on water 1권》/ 파티. 《소설의 배경》중에서 -

번식력이 두려워 여성체를 만들지도 못하고 생식력을 제거하면 전투 능력도 떨어지는 합성체는 처치곤란의 존재가 되어 인간을 위협합니다.

좋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체제 전복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절대 권력을 가진 자가 후계자를 생산하는 데나 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 유피테르에 의해 만들어진 이아손 - 요시하라 리에코의 《아이노쿠사비》에 등장 - 과 천재들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황가의 유전자를 조합해 만든 율 - samk의 《Mars door》에 등장 - 입니다. 《G》는 유전자 조작으로 생식이 불가능한 군인을 만들어내는 편이 작품의 흐름에 어울립니다.

이런 작품의 어디가 독자를 끌어당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임신하는 소재가 처음 나온 것도 아니고, 설정에도 오류가 있고, 내용도 오류가 있습니다. 배경도 어설프고, 분량이 긴 장편이라 서사성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류가 아이를 낳아 직접 젖을 먹이는 모성애를 보여주는 장면이 조금 특이하긴 합니다만. 검증되지 않은 입소문 때문인지 제가 깨닫지 못한 뭔가가 있는지 아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