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핍진성을 높이는 요소
임신수를 다룬 작품은 설정 자체에 모순이 있으므로 핍진적인 요소가 없으면 황당한 거짓말이 됩니다. 이번 장에서는 핍진성을 높이는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비장미(悲壯美)
세 번이나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지만 예전의 힘이 사라져 일개 마인보다 못하게 된 카사르지만 임신한 아이를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천하를 오시하는 절대마왕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세 번이나 죽이고 결국 아이까지 잃는 라크첸. 비극적인 요소가 다분합니다. - 《마왕》
죽고 싶지만 죽지도 못하고 조상의 죄업을 이어받을 아이를 낳아야 한다면, 태어난 아이를 볼모로 주어야만 마음 편히 죽을 수 있다면(과연 아이를 볼모로 주고 편안히 죽을 부모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아이를 지키기 위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형벌을 받는 연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 《바람의 정원》
남성의 임신이 종족 보존의 최후의 보루였다면, 임신한 남자들 대부분이 미치거나 출산 도중 죽어나갔다면, 태어난 아이들이 불쌍하고 가엽게 자라 강대국의 볼모로 잡혀간다면 - 《황금악어》- 독자는 당연히 주인공의 운명에 동정합니다.
합성체. 인간의 오만이 빚어낸 생명. 인간을 부모로, 그리고 신으로 둔 불행한 존재들. 그 존재들 역시 생명이기에 생존과 번식을 갈구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처음부터 합성체들에게는 암컷이 없었다. 당연하다. 인간들은 전쟁의 도구로 합성체들을 창조했도 그들은 합성체의 암컷은 원치 않았다. 문제라면 합성체들의 생식기능을 없애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쟁벌레로서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거였다. 그래서 인간은 생식기능을 남겨놓은 상태로 합성체들이 무작위의 암컷을 대상으로 발정하지 못하도록 조작했다. 오직 자신의 유전자 코드와 같은 존재에게만 발정을 하도록 말이다.
- 《Walking on water 1권》/ 파티. 100 p.-
위와 같은 이유로 짐승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성적 불구인 몸으로 합성체들은 하나뿐인 짝을 찾아 일생을 보냅니다. 또한 짝을 발견하면 옆에 두고 떼어놓지 않습니다. 대체물이 없는 보물을 잃은 사람의 마지막은 파멸뿐입니다. 퓌르가 제흠에게 목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쁨보다 슬픔에 민감한 한국인의 특성상 주인공이 슬프고 애절하며 절박한 상태에 있을수록 공감을 얻습니다. 남성의 임신이라는 황당한 설정도 마지막까지 몰린 주인공의 유일한 선택이었다면 납득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둘째, 당위성
천년 전부터 내려온 전통에 따라 신탁을 받은 족장은 남성과도 결합하여 다음대의 족장을 생산합니다. 이처럼 《신부》는 남성의 임신을 전통으로 만들어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반대로 《dream-morpheus : Another world》는 고도의 테크놀러지를 이용하여 남성의 임신이 가능하다는 과학적인 결론을 도출합니다. 《맛있는 관계》에서 찬영은 임신한 여자와 똑같은 행동을 보임으로써 그가 임신했음을 명확히 인식시킵니다. 이들 작품을 읽으면 남성의 임신이 필연적이며 당연하게 생각됩니다.
셋째, 유기적 결합
《흑무를 손에 쥐다》는 영하의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시작합니다. 영하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애지중지 키우면서 친해지는데 아이는 이중자아를 갖고 하나는 남편(흑무)으로, 다른 하나는 자식(키이) 노릇을 합니다. 영하가 키이를 직접 낳지 않았다면 흑무의 행패를 견디지 않았을 것이며, 흑무는 영하가 자신을 낳지 않았다면 진작에 없애버렸을 겁니다. 또한 키이가 영하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여의주를 넘겨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하의 임신과 출산은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의 근간이 되어 작품 중간에 여러 번 언급되며 등장인물 각자의 입장을 정립하는데 쐐기가 됩니다.
보고서나 사전 형식을 빌어 사실성을 높인 것도 있습니다. 이들 중에 하나만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쉽게 구별할 수 없을 뿐이지 위에 소개한 요소가 교묘하고 다양하게 작품에 녹아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임신수를 다른 작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작가가 어떻게 설득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과학적인 방법이든, 신화와 전설을 이용한 신탁이든, 종족 번식을 위한 최후의 방법이든, 속죄양을 생산하기 위한 신벌(神罰)이든 간에 어떤 설명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