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

紙花 (2016. 1. 31, 예약: 10,000원)

작품유형: 황궁무협, 네임드버스, 동양판타지

시대/장소: 태흥 13년/가상제국 주나라

커플: 기제운(34, 주나라 7대 황제 건명제, 기다림공), 지화(사여진, 25, 정수관, 둔감수)

주나라 태자 기제강은 황장자로 태어나 장차 성군이 되리라 모두가 예상했던 희대의 기재였다. 반면 동복아우인 7황자 기제운은 패도적인 인물로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무장이다. 스물 셋의 기제강은 일찍 성혼하여 두 아내와 아들이 있었지만 옥조의 표식이 나타나자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찾아 악주로 내려온다. 하늘이 정해준 짝을 일컬어 옥조라 하는데 서로의 몸에 인이 새겨져 있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기제강의 옥조는 여덟 살의 사여진으로 악주 자사 사현의 장남이다.

안팎으로 어수선한 나라와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투, 의심이 많아 태자조차 믿지 않는 황제의 눈을 피해 기제강은 옥조의 등장을 숨기기로 결정하고 여진의 얼굴만 보고 간다. 그러나 전쟁 중에 기제강은 실종되고, 여진은 고아가 됐으며, 기제운은 새로운 황제가 된다.

기제운에 의해 황궁의 정수관(옥조가 짝을 잃어 반쪽이 된 사람, 몸과 마음이 깨끗하다하여  태감이나 궁녀가 됨)이 된 여진은 지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review: 

이것저것 다룰 이야기도 많고, 소회도 심상치 않은 작품입니다.

네임드버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메가버스물의 하부장르로 특정 인연으로 맺어진 커플은 신체의 일부에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다는 설정입니다. 센티넬버스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원랑의 《하얀 불꽃》이 센티넬버스이면서도 네임드버스물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팔뚝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반전은 옥조의 인연인 황태자 기제강과 사여진이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제강의 동생 기제운과 옥조를 잃은 반약-사여진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기제강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감쪽같이 실종되어 죽었다느니 도망갔다느니 소문만 무성하고 권위는 땅에 떨어져 폐태자가 되었습니다. 옥조의 인연을 잃은 사람은 실성하여 이지를 상실한다거나 죽는다던가 하는 소문이 도는 마당에 여진은 옥조를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기제운도 목숨이 위태로웠으나 후계 전쟁에서 살아남아 동궁이 되었고, 형님의 옥조를 정수관으로 만들어 곁에 둡니다. 어린 나이에 홀로 된 형수님을 돌보는 심정으로 곁에 둔 것은 아니고 키워서 잡아먹으려는 것입니다. 내막을 모르는 지화는 기제운을 제외하고는 육친이라 부를 만한 이가 없어서 그만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황제가 되고 황후와 여러 비빈들 사이에 자식을 둔 기제운은 지화를 모함하려는 장귀비의 계획을 알게 되자 기회를 틈타 반도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을 합니다.  

이제 기문현 사건에 대해 파헤쳐보겠습니다. 동주의 주도인 무령에서 무령 자사 탁요풍이 진횡을 일삼다 황제의 명을 받고 조사하러 온 직지사자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 탁요풍의 관군은 황제의 경만군에게 함락되고 탁요풍은 자살한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는 듯 합니다. 그러나 탁요풍은 비슷한 모습의 시체를 이용하여 자살을 가장하고 동주를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그의 서재에서는 “황장자를 보았다”는 쪽지가 발견됩니다.

한편 기문현에서는 사람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되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황제는 장귀비의 친척인 장안태를 조사관으로 내세워 기문현으로 보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표면적으로 냉궁에 유배된 지화도 몰래 빼내 조사 겸 유람을 다녀오라 권합니다. 그 사이에 장귀비의 집안을 정리하고, 위험 요소도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조사관 얘기로 들어가겠습니다. 70대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장안태는 죽은 태자의 스승으로 두 사람의 주군을 모시지 않는 대쪽 같은 인물입니다. 조카뻘인 장귀비의 엄벌을 앞장서서 요청한 인물이며 공명정대하고 신망이 두텁습니다. 유일한 미련이 주군의 옥조를 한 번 만나보는 것입니다. 하늘이 정한 주군의 반쪽이며, 사라진 주군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화의 동행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무협 쪽을 살펴보겠습니다. 적가장의 젊은 공자 적우겸 일행은 강호를 유람하다 기이하게 죽은 시체를 발견하고 관에 신고합니다. 그리고 기문현의 소문을 듣습니다.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느낀 일행은 관에 협조하여 조사를 도왔으나 원래 무림과 관은 외면하는 사이라 사건에 진척은 없습니다. 이때 새로운 조사관 장안태가 내려오고 사건은 전기를 맞이합니다. 그들이 발견한 시체가 동주에서 사라진 탁요풍입니다.

새로운 조사관에게 무림맹이 협력하고 탁요풍이 실패한 강시 재료임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십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마외도 사혼곡이 실체를 드러냅니다. 막강한 금력을 바탕으로 생강시를 만들고 반혼술을 행하고 조정의 관리들을 수족처럼 부리던 사혼곡은 기문현의 한 계곡에서 재기를 노리고 세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라진 기제강의 흔적이 사혼곡에서 발견됩니다.

십 육년을 사라진 주군만 그리워하던 장안태는 고령으로 기관진식이 빽빽한 사혼곡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지화를 보내려 합니다. 지화의 신변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황제는 거절하나 장안태는 지화를 설득해 기관으로 보내는데 성공합니다.

장르가 다양하여 장르별로 줄거리를 요약했습니다. 동양판타지는 네임드버스(옥조)라는 설정으로 풀었고, 황궁물은 후궁 장귀비의 궁중암투로 나타납니다. 무협은 지화를 호위한 은림군과 적우겸 일행, 무림맹, 사혼곡에서 두드러집니다. 하나의 설정으로도 쓰기 어려운 장르를 엮은 것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판타지인 것 같다가 무협으로 보이다가 궁중암투로 흐르니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스토리는 흥미진진한데 긴박감이 떨어집니다. 고민한 흔적은 엿보입니다만 덜 익었다고 해야 할지, 숙련된 솜씨는 아닙니다.

장르별로 한 권씩 묘사와 캐릭터에 신경 써서 이야기를 풀었으면 생동감 있고 입체적인 작품이 탄생했을 것입니다. 둘 이상의 장르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대표작이 그웬돌린의 《花渡月海》입니다. B1의 《少年幻想肢》나 《皇帝夜決錄》도 차원이동, 궁중암투, 역행물 등의 장르를 혼용하여 구성한 수준작들입니다.

압축된 스토리는 독자에게 여백을 유추하는 재미를 줍니다. 사랑을 알기도 전에 인생의 반쪽을 잃은 소년, 의지하던 형님을 잃고 권위도 추락하여 황권에 도전하는 황자, 요순에 버금가는 성군이 되리가 기대했던 제자를 잃은 늙은 스승의 한, 어린 연인이 커서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길 바라는 절대자의 기다림, 갑자기 사라져 강시가 되어 나타난 황태자 등. 이리저리 상상하면 감정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스위치가 만져집니다. 수작은 아닙니다만 정성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오타만 제외하면.

PS: 오타입니다.

장만위는 궁 밖으로 말이 돌자마자 소문의 소위가(--> 수위가) 높아질 것을 – 25 p. -

며칠 밤낮을 꿈에 나올 정도로 끔직한(--> 끔찍한) 것이었다. - 82 p. -

하지만 관은(--> 관의) 입장은 달랐다. - 84 p. -

예의를 차리는 이들이 섞여 있기니(--> 있기는) 하지만 – 116 p. -

잠자리를(--> 잠자리는) 편하더냐 – 173 p. -

이쪽이 강적을 상대하는 게 맡긴(--> 맞긴) 한 데 – 246 p. - 

황제에게는 천하와 지하(--> 지화) 모두가 있었지만, 지화는 황제만을 품었다. - 293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