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니스트(Mechanist)
작품연표
나래아 1-4, 외전 (2018. 2. 20, 비욘드 출판, 리디북스 제공, 가격: 13,500원)
작품유형: 동양판타지, 시대물, 황궁물
시대/장소: 1907년/경성 운현궁
커플: 이도(20대 중후반, 고종의 서장자, 승친왕, 적십자사 부총재, 야망공), 길운우(22, 부희의 아들, 무당, 은둔수)
국무(國巫)였던 어머니는 나라의 명운을 암시한 일곱 개의 예언을 남기고 사라진다. 마지막 예언을 듣지 못한 고종황제는 황자 이도를 시켜 어머니를 추적하고, 사라진 어머니 대신 아들 운우가 잡힌다. 어머니가 지어준 옷을 빼앗긴 운우는 귀신에게 빙의하는 체질이 되고 여러 사건에 휘말린다.
review: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작품입니다. 독립 운동가 이름의 악의적 차용, 식민사관, 역사왜곡 의혹이 일어 판매는 중지되고 환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작가에게는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으며, 작가의 다른 작품들의 역사왜곡 의혹도 계속 폭로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이름이 세종대왕과 같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며, 식민사관이나 역사왜곡은 소설적 허구로 이해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분리하여 읽었더니 민족적 공분이나 작가의 잔류 일본인 의심은 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입수가 불가능하고 불매 운동에 동참하는 목소리가 높은 관계로 줄거리는 최대한 자세하게, 그리고 결말까지도 언급하고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명성황후 민자영이 의지하는 국무(國巫) 진령군은 대나무 숲에서 알 하나를 줍습니다. 알에서는 여자아이가 태어났고, 신묘한 예언을 합니다. 진령군은 아이에게 부희라는 이름을 주고 수양딸로 삼습니다.
“네 어미잖아. 태명은 나래아, 태어난 이후엔 부희라 불렸고, 지금은 뭐라고 부르지?”
- 중략 -
“하루는 진령군이 대나무 숲에 기도하러 갔다가 알 하나를 주웠어. 그 알에서 태어난 게 부희였고, 부희는 어릴 때부터 과거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었다더군. 물론 이 모든 건 왕실 비사에서 주장하는 내용이야.”
부희는 예언하기 전에 춤을 추는데, 칠일을 춤추고 여섯 개의 예언을 민왕후에게 남기고 종적을 감춥니다.
“본론은 이제부터야. 부희가 사라지기 전에 일곱 날 동안 춤을 췄어. 그런데 남긴 예언은 여섯 가지뿐이었지. 일곱 날을 췄는데 왜 예언은 여섯 개뿐인가? 마지막 하나는 왜 숨겼을까....”
그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이제 막 피를 빨아먹고 온 듯한 입술이었다.
“도망치지 않곤 못 배길 만큼 위험한 예언이 아니었겠나.”
계유년, 공주님 한 분과 왕자님 두 분이, 차례로 왕후 마마님을 만나러 올 거예요. 모두 맑고 어진 분들이에요. 하지만 곧 다시 돌아갈 테니 수의를 준비하세요. 여자 수의 한 벌, 남자 수의 한 벌.... 둘째 왕자님은 용포를 준비하시면 돼요.
을유년, 강한 나라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억지 서약을 강요해요. 조선의 섬도, 물길도, 산도 모조리 빼앗아 갈 거예요. 내 집안싸움조차 눈치받고 해야 하는 형국이니 절대 도장을 찍으면 안 돼요.
갑오년, 농사짓던 사람들이 곡괭이와 낫을 들고 불을 일으켜요. 산과 들은 시체가 언덕을 쌓고 피 냄새로 물들 거예요. 그 사람들을 달래 주지 않으면 훗날 더 크고 무서운 불이 되어 돌아와요.
을미년, 새벽닭이 올 때 사람들도 통곡할 거예요. 궁의 안주인은 혼백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육신이 될 거예요. 궁궐 문을 걸어 잠가도,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소용없으니 뼈저리게 외롭고 두려울 뿐이에요.
무술년, 용포를 입어야 할 왕자님은 믿었던 사람이 주는 검은 물을 마실 거예요. 살아 있어도 생기가 마르게 하고, 씨를 뿌려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차이니 절대 마셔선 안 돼요. ... 그리고 그해 봄이 시작될 때 조선의 큰 별이 떨어져요.
정미년, 임금님의 편지를 전하러 먼 여정을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해요. 이로 인해 주인을 빼앗긴 옥좌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요. 하지만 옛 주인도 새 주인도 없는, 어디에도 볼 수 없는 괴이한 의식이 될 거예요.
예언을 무시하던 황제는 아내의 죽음 이후 부랴부랴 부희를 찾기 시작합니다. 수색은 거상 임영효의 외손자이자 자신의 서장자인 이도가 맡습니다. 이도와 이묵 형제는 정조를 의심받은 임비가 목을 매어 지킨 아들들로 이도는 이권에 눈이 멀어 딸을 황제에게 바친 외할아버지를 증오합니다. 그러나 왕위를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습니다.
황궁을 나온 부희는 사냥꾼에게 잡혀 세쌍둥이 아들을 낳습니다. 가족들은 세간의 눈을 피해 숨어 삽니다. 그러나 부희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어느 날 종적을 감춥니다. 아내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 사냥꾼은 위의 두 형제를 죽이고 자살합니다. 그렇게 운우는 여덟 살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예언대로 스물두 살이 되었을 때 이도에게 잡힙니다.
‘네가 스물두 살이 되는 날에 너를 만나러 손님들이 올 것이다. 네가 어디에 있든 찾을 거야. 그때 너는 다행히도 크게 다칠 것이며... ... 받아들이거라. 아무리 깊이 숨어도 소용없으니.
어머니가 머리카락으로 만들어 준 옷을 빼앗긴 운우는 귀신들리기 쉬운 몸이 되고, 차츰 귀신들리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옷을 벗으면... 어떻게 되요?’
‘조금씩 조금씩... 너를 빼앗겨 육신만 존재하는 빈껍데기가 된단다. 슬퍼도 네 슬픔이 아니고, 기뻐도 네 기쁨이 아닌... 네가 아닌 무엇으로 살아가지. 영원히...’
운현궁에서 어머니와 이도의 악연을 알게 된 운우는 혼란에 빠지고, 옷을 되찾아 탈출할 생각만 합니다.
“헌데 그 무당 년이 임비 마마님의 점괘를 본 거야. 매화나무가 새끼를 배고 입궁했다느니, 매화나무 자손이 오얏나무인 척하고 있다느니.... 마마님 함자가 임매령이거든.”
- 중략 -
“...혹시... 그 무당 이름이... 부희였소?”
부희의 아들이라는 사실 외에 관심이 없던 이도는 차츰 운우에게 빠져듭니다. 한편 양성구유에 난생(卵生) 신화를 가진 어머니의 내력을 알게 된 운우는 운현궁 연못의 고니 알을 훔쳐 이도와 자신의 알인 것처럼 속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의 한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생 이묵과 그가 떠받드는 진령군의 마지막 신딸 초산의 음모와 이도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황귀비의 노력으로 운우는 죽을 위기에 처하고 이도에게 극적으로 구해집니다. 그리고 부희의 마지막 예언이 밝혀집니다.
이도가 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나라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일곱 번째 예언이었다. 나래아가 도망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위험한 예언이었다. 만약 이를 발설했다면 민 왕후는 어린 이도를 죽였을 것이다. 임 비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나래아는 차마 그녀의 아들까지 같은 전철을 밟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밀을 가슴에 묻고 도망쳤다.
운우를 위해 일생의 목표와 망해가는 나라를 방치한 이도와 귀신과 소통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인 운우의 이야기입니다. (확정되진 않았으나 작품의 흐름상 이도는 왕위를 포기합니다.) 초반의 볼드체 문장이 보여주는 예언과 이를 받아들이는 왕후장상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신조의 알에서 태어난 영험한 무당, 하나씩 맞아 떨어지는 무서운 예언들, 밝혀지지 않은 마지막 예언. 이를 추적하는 까칠한 황자와 조실부모하고 외롭게 살아온 청년. 보색대비 같은 효과를 줍니다. 그러나 운우가 이도에게 잡혀 운현궁에서 지내면서 작품의 선명성이 희석되었습니다.
옷을 찾기 위한 운우의 시도는 지리멸렬했으며 이도의 운우에 대한 집착도 공감이 안됐습니다. 거기에 황귀비의 어린 아들 이연의 운우에 대한 연정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고니 알 속임수는 처음에는 흥미진진했으나 내막을 알리는 과정이 싱거웠고 결말도 카타르시스가 없습니다. 초반의 난생신화도 진령군의 거짓말로 밝혀짐에 따라 –부희는 진령군의 사생아 였음. 그러나 부희의 예언 능력은 진짜임 –기본적인 설정이 뒤틀렸습니다. 인간의 아이인 부희가 어떻게 신조의 영을 받아 예언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졌습니다. 역사왜곡 같은 부차적 요소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용두사미입니다. 적당히 읽을 만합니다.
PS: 2016년 리디북스 BL대상은 표절 의혹이 제기되어 환불이 진행된 장량의 《Who’s your Daddy?》. 2017년 대상은 메카니스트의 《힐러》. 역사왜곡 작품으로 낙인찍혀 환불이 진행된 《나래아》외에 《힐러》를 포함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역사의식이 의심받고 환불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올해 대상은 어떤 전철을 밟게 될지 궁금합니다.
야수 上, 下 (개인지 1호, 2010. 1. 24-1쇄, 2013. 6. 2-2쇄, 예약: 25,000원-1쇄, 27,000원-2쇄)
작품유형: 동양판타지
시대/장소: 현대/이승과 저승의 경계, 저승 염라국
커플: 염적(20, 전직 염마왕, 야수공), 손오반(17, 고등학생, 학대수)
반이에게는 술주정뱅이 아버지 손길용과 일란성 쌍둥이 형 다환이 있다. 두 사람에게 어렸을 때부터 학대를 당한 반이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으로 자라나게 된다.
어느 날, 반이의 아버지인 손길용이 술에 취해 숲에 들어갔다 길을 잃어 우연히 대궐같은 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불사조의 알을 훔치려다 실수로 깨버린 그는, 그 후 집주인인 야수(염적)에게 들켜 죽을 위기를 처하지만 불사조의 알과 등가교환으로 자신의 장남을 맞바꾸기로 하여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손길용은 장남인 다환과 작당하여 차남인 반이를 장남으로 속여 염적에게 보내게 되고, 반이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오랜 학대로 엉망이 된 외모와 위축된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은 염적은 반이를 쫓아내려 하지만, 반이의 따듯한 성격과 상처가 나으면서 변하게 된 아름다운 외모에 점차 끌리게 된다.
한편, 염적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를 받아 낮에는 야수로, 밤에는 사람으로 지낸다. 지독한 육체적 고통을 유발하는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힌트로 답을 얻어낸 후, 수백 년동안 죽어있던 서천 땅에 꽃을 피워야 한다. 반이는 염적을 위해 기꺼이 이 수수께끼에 도전하게 되는데…. 과연 반이는 수수께끼를 풀고 염적에게 사람의 모습을 되찾아주고 오롯한 그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上
01 5
02 23
03 57
04 103
05 123
EP. 반이의 마법의 반성문 163
06 169
07 213
08 241
09 291
10 349
11 373
12 399
13 413
下
14 5
15 31
16 79
17 135
18 173
19 243
EP 281
外傳
01 305
02 341
03 373
04 421
EP 445
後記 449
review:
시작하기 전에 염적의 나이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광고에서는 염적의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고 내용상으로도 과거 염마왕으로서의 행적이라든지 저주를 받고 갇혀 살면서 오랜 시간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 부분에서 최소한 일이백 살은 넘어 보입니다. 그런데 아래 문장만을 놓고 보면 염적은 스무 살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15살이 되던 날, 저주는 어김없이 그 사악하고 커다란 입을 벌려 밝고 창창한 미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이 땅에 오게 된 지도 어언 5년째. - 上 30 p. -
전에 염적이 15살이 된 후 줄곧 이곳에서 갇혀 살다시피 지냈다고 들었다. - 上 322-323 p. -
2쇄까지 찍었으면 오타와 오류는 수정이 되어야 하는데 변한 것이 없습니다. 이제 리뷰로 들어가겠습니다.
《미녀와 야수》클리셰를 그대로 사용해서 참신한 맛이 없습니다. 어리버리하고 착한 반이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서운 형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하고 야수인 염적을 그 연장선에 놓았으며 저주를 풀 자로서의 위치 또한 차남의 신분이라 불안정합니다. 미남과 야수를 오가는 염적은 전형적인 개차반 성질을 보이며 잔소리하며 시중드는 유운까지 예상과 다르지 않아 지루합니다. 염적과 대척점에 선 태산대왕도 성격이 야비하고 실력은 모자라 악인이지만 미워할 수 없다거나 응원하고픈 서브 캐릭터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넘어설 수 없는 절대악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닌 찌질한 동내 양아치 필이라 없느니만 못합니다.
선조의 죄가 후대까지 대물림되는 소재도 기존 작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담적단의 《꿈꾸는 용이 잠든 나라》, 란마루의 《바람의 정원》, 피모의 《광동수산》같은 작품에는 보다 정교하고 잘 설계된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감정변화와 반이를 애완새 취급하는 염적의 모습은 봐줄만 합니다. 평균이하입니다.
PS: 오타입니다.
"내 명령을(--> 명령이) 말끔하게 무시당한 적도 처음이지만 무시한 녀석을 살려준 것도 처음이군." - 上 151 p. -
순간 낮게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반이(--> 반의) 머리카락에 사나운 손이 휘감겼다. - 上 321 p. -
Healer 1-3 (개인지 3호, 2012. 4. 29, 예약: 33,000원)
작품유형: 현대판타지, 치유물
시대/장소: 현대/서울
커플: 차이석(31, 태령그룹 전무, 중독공), 야바(장세진, 23, 과대망상증 환자, 힐러, 치유수)
자폐아 형과 힘들게 사는 야바(세진)는 노래를 잘하는 중학생이다. 야바는 어느 날 같은 동네에 이사 온 코카인에게(채우) 신비한 느낌을 받는다. 알고 보니 코카인은 노래로 병을 고치는 힐러였고 그 힘을 이용하려는 강기하에게 쫓기는 상황이다. 우연찮게 휘말려 함께 강기하에게 잡혀간 야바와 코카인은 거세당한 뒤 카스트라토로 성장하고, 부자들만 출입하는 윤락업소, 파라디소에서 가수로서의 새 삶을 걷는다. 뒷방으로 몰려난 야바에 비해 코카인은 아름다운 노래로 신처럼 추앙받으며 병든 사람을 살린다.
차이석은 코카인의 노래에 푹 빠져 파라디소를 자주 드나든다. 그런 차이석을 짝사랑하는 야바는 나날이 코카인을 증오한다. 어느 날 말기 암환자인 차이석의 형이(차명환) 힐러의 존재를 알고 코카인을 불러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차이석은 차명환의 암이 치유되길 원치 않았고, 코카인을 대신할 가짜 힐러를 데려가려고 모략을 꾸민다. 그 와중 차이석의 눈에 띈 야바, 차이석은 야바에게 특별한 수고비를 주는 조건으로 차명환 앞에 데려간다. 그날부터 야바는 코카인 행세를 하면서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1권
Intro 005
Operetta 043
2권
Opera seria 005
3권
Opera seria 005
Opera buffa 067
Python's poem 321
푸른수염의 고백 343
review:
바람아 불어라, 나 여기 있다.
운명아 덤벼라, 나 여기 있다.
넌 나를 증오하지? 나도 마찬가지다.
내게 없는 것은 생명보다 소중한데 네가 빼앗았구나.
서로 물어뜯다가 죽으면 괴로울까? 행복할까?
솔직한 감상입니다. 야바, 코카인, 차이석, 강기하, 장세준 등 등장인물의 인과(因果)는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혀서 끊어내는 결과가 되었는데 카타르시스 만땅입니다. 애증의 끝을 보여주는 야바와 코카인, 사랑과 중독의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야바와 차이석, 원망과 미움으로 죽고 죽이는 코카인과 차이석, 후회와 질투에 몸부림치는 강기하, 신과 연인 사이에서 방황하는 장세준.
빠른 전개와 예상치 못한 반전에 캐릭터는 더욱 생생해지고 치유와 용서라는 주제와 대비되는 폭력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소재도 새롭고 흐름도 매끄러운 수작입니다.
Toxin 상, 하 (개인지 2호, 2010. 10. 3-1쇄, 2013. 6. 6-2쇄, 예약: 22,000원-1쇄, 24,000원-2쇄)
작품유형: 동양판타지, 복수물
시대/장소: 과거/가상왕국 배달국 나라가온성
커플: 가론 흑무천왕(黑無天王, 27, 배달국 황제, 소시오패스공), 로하(담하, 19, 인간과 이매족 혼혈, 화가, 복수수)
도깨비같이 튀어나온 뿔. 붉은 눈동자. 날고기를 먹는 습관으로 인간들에게 배척당하는 이매족. 이매족 어머니와 인간 아버지를 둔 혼혈 청년은 두 종족에게 멸시당하며 이름도 없이 이매 마을에서 어머니와 살아간다. 아버지는 이매족 어머니와의 통정으로 이매족의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 아픈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한지 2년. 그를 위하는 사람은 인간 하급관리 라온힐조 뿐이다. 어느 날 마을에 쳐들어온 배달국 국왕 흑무천왕은 이매족을 몰살시키고 청년의 어머니를 잔인하게 죽인다. 복수를 다짐한 청년은 화가로 가장한 채 왕국에 들어가고 흑무천왕의 눈에 드는데 성공하는데…….
상
1. 5
2. 20
3. 30
4. 41
5. 53
6. 62
7. 74
8. 89
9. 102
10. 115
11. 132
12. 146
13. 150
14. 175
15. 184
16. 197
17. 213
18. 227
19. 240
20. 255
21. 269
22. 287
23. 306
24. 323
25. 라온힐조 336
하
26. 5
27. 17
28. 가론 37
29. 가론 47
30. 63
31. 85
32. 99
33. 120
34. 142
35. 152
36. 179
37. 201
Detox I. 207
Detox II. 223
Detox III. 244
Detox IV. 264
Detox V. 285
Detox VI. 303
Detox VII. 311
Immeholic. 327
Epilogue.
review:
다음으로 주인공의 이미지를 조성할 때 고려해야 할 다섯 가지 항목을 설명해 보겠다. 일반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호소하려면 히어로나 헤로인은 이 다섯 가지 모두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태연하게 살인을 범할 수 있는 주인공은 안 된다.
(1) 고결함
다시 말해 내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살인, 폭행, 금전적인 탐욕, 절도, 배신 행위 등 부도덕한 항목들이며 이들 문제에 관한 한 주인공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옳고 그르고의 관념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어쩌다 역경에 빠져 도덕적인 관념이 흔들릴 때가 있다손 치더라도 주인공은 한사코 선과 정의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가능한 한 재난을 당하고 있더라도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 법이나, 윤리, 또는 도덕 등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 중략 -
어떤 때는 얘기의 진행상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빠질 때도 있다. 가령 악한이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고 도끼로 목을 후려치려고 하는 아슬아슬한 순간, 기회를 엿보던 주인공이 품었던 단도로 악한을 찔러 죽임으로써 화를 면한다는 장면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럴 경우라도 주인공이 그걸 당연한 행위로 여기고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서는 절대 안 된다. 살인이 제아무리 정당 방위였고 피해자가 제아무리 흉악한 악인이었다 할지라도 주인공은 자신의 죄악에 와들와들 떨고 살인을 한 것을 혐오스럽게 뉘우치는 모습으로 그려져야만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며, 도덕적 행위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도 태연한 주인공이라면 독자의 동정이나 공감을 얻기 힘들다.
- 《베스트 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 (원제: How to write bestselling fiction)》/ 딘 쿤츠. 문학사상사. 1996. 134-135 p. -
호박대왕의 《도마뱀》시리즈를 리뷰하면서 다루었던 내용이라 다시 언급해야하나 고민했는데 위의 인용이 빠지면 리뷰가 진행이 안 되므로 부득이 적었습니다.
병사들은 창검을 내던지며 도망쳤다. 이번엔 대부사자의 두꺼운 뱃살에 섬광이 그려졌다. 갈라진 살가죽으로 허연 지방 덩어리가 나왔다. 대부사자는 절규하며 운사의 뒤로 기어갔다. 숨 쉴 틈도 없었다. 도망치는 병사들의 절규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막바지에 몰린 병사는 본능적으로 흑무천왕의 팔을 찔러버렸다. 주인을 물어버린 개는 극도의 공포로 숨죽였다. 흑무천왕의 눈이 번뜩이는 찰나 공포에 질린 병사의 얼굴이 바닥에 떨어졌다. 형체가 망가진 주검에 구역질이 치솟았다. 피에 절은 울부짖음과 몸통만 남은 육신이 한데 뒤엉켜 끔찍한 지옥도를 그렸다. 이제 비명 소리조차 나지 않는 적막 속에서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얼어 있었다. 그의 발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핏물과 내장을 짓이기며 다가왔다.
“태의를 불러와.”
도륙을 마친 살인귀의 음성은 얕은 흥분에 젖었다. 시신을 수습하던 우사가 어딘가로 달려갔다. 운사는 사방에 깔린 살덩이를 대충 발로 치우더니 문을 닫고 나갔다. 흑무천왕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나는 넋이 나간 채 피로 배를 불린 검을 바라보았다. 살점과 피가 달라붙은 검날은 여전히 허기진 눈을 번들거렸다. - 하권 136 p. -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소재나 설정이 기발하거나 작품성이 뛰어나지 않으면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소시오패스 흑무천왕과 복수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갉아먹는 로하. 《도마뱀》시리즈의 인물들과 정반대입니다. 작품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집중도 공감도 되지 않습니다. 읽다가 쉬기를 수차례 했고 몇 번이나 집어던지고 싶었습니다. 신선한 시도였으나 필력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흑무천왕이 냉혈한이 되는 이유가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들을 남편으로 보는 미친 어머니의 집착은 지나치게 상투적이어서 없느니만 못합니다. 못되게 굴고 후회하는 작품은 몇 있는데 –허샤바이의 《Karen》, 바우와우의 《백사》등 –못된 짓을 한 사람이 엄청난 보상을 하거나 못된 짓의 원인이 분명하지 않다면 감정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머니를 죽인 원수, 소시오패스라는 이중의 걸림돌이 있습니다. 흑무천왕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으며 로하는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데 실패했습니다.
둘째, 주인공수 뿐만 아니라 주변인물의 서걱거리는 관계도 반감을 불러옵니다. 부하 3인방과 아첨하기 바쁜 대부사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조화로운 주종관계를 보이는 작품들 –호박대왕의 《백은의 곰》의 에티엔과 센리, 그냥파랑의 《Sacer》의 유더와 친구들 –과 비교하면 엇박자가 나면서 겉도는 모습이 보입니다. 주고받음이 없는 메마른 인간관계가 작가의 의도였다면 훌륭히 표현하였으나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은 없습니다.
셋째, 조화롭지 못합니다. 작품은 말 달리고 총과 대포가 개발됨과 동시에 미술치료가 등장하는 퓨전 판타지입니다. 그러나 배달국, 풍백, 우사, 운사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의 시작점에 바탕을 두고, 이매(얼굴은 사람 모양이고 몸은 짐승 모양을 한, 사람을 잘 홀린다는 네 발 가진 도깨비), 나티(짐승 모양을 한 일종의 귀신)와 같은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영어입니다. 소제목도 모두 영어라서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에서 오는 위화감이 있습니다.
오타입니다.
흑무천왕은 다가오려는 운사를 흑무천왕은(--> 삭제) 눈으로 제지했다. - 하권 171 p. -
PS: 어린 시절의 결핍이 한 소년을 어떻게 소시오패스로 만드는지 설명한 책이 있어서 발췌했습니다. 이런 책들을 읽고 나면 탄생 직후의 일 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고 말도 못하는 아이들을 새삼스레 쳐다보게 됩니다.
철통같은 경비를 지나 교도소로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겁난다. 정문에서 철저하게 신원을 확인하고 나면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고 주머니를 뒤져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여기에는 열쇠, 지갑, 휴대 전화를 비롯해 도난당하거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과 모든 신분증이 포함된다. 여러 개의 잠긴 문을 열고 지나가는 것은 사실상 이 지점을 지나 포로로 잡혀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조치는 표면상 방문객이 수감자에게 인질로 잡혀 탈출에 이용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그래도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수많은 경비와 그 사이에 전자 감시 장치가 빈틈없이 설치된 서너 겹이 넘는 두꺼운 금속제 문이 등 뒤로 쾅 닫히고서야 방문한 수감자를 만날 수 있다. 레온. 나이 열여섯에 두 명의 10대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체를 강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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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의 형 프랭크(가명)는 부모나 다른 친척들처럼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잘나가는 배관공으로 결혼해서 성공적으로 가정을 꾸렸으며 공동체에서는 존경을 받는 두 자녀의 아버지였다. 범행을 저지른 날, 형이 집에 돌아왔을 때 레온은 피가 묻은 부츠를 신은 채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레온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소녀 둘이 잔인하게 폭행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속보가 계속 흘러나왔다. 곁눈질로 레온의 부츠를 알아본 프랭크는 동생이 집을 떠나자 즉시 경찰에 범행 용의자로 신고했다.
형제는 서로의 유전자를 최소한 50퍼센트 이상 공유한다. 프랭크의 유전자가 우연히 레온보다 동정심을 느끼는데 유리했다 해도 이것만으로는 너무나 다른 기질과 삶을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더구나 내가 아는 한 레온과 프랭크는 한집에서 같은 부모의 손에 자라났기 때문에 레온의 성장 환경이 문제를 일으킨 주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의 부모 마리아(가명)와 앨런(가명)을 만나고 나서야 레온의 문제를 일으킨 원흉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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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열다섯 살 때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근처 호텔의 메이드로 일했고 앨런은 졸업한 후 근처 공장에 취직했다. 앨런이 스무살, 아미라가 열여덞 살이 되던 해 둘은 결혼했다. 앨런은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했고 벌이도 좋았다. 마리아는 곧 임신했다.
임신 소식은 양가 가족 모두에게 경사였다. 마리아는 일을 그만두고 아기와 함께 대가족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부부는 삼촌이 소유한 아파트의 지하에 집주했고 마리아의 친정은 바로 앞집에, 앨런의 본가는 한 블록 거리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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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기는 대가족의 넘치는 사랑과 관심 속에서 삶을 꾸려 나갔다. 마리아가 칭얼대는 아기 돌보기에 지칠 때면 근처의 사촌이나 엄마가 언제든 달려와 도와주었고 아기 울음소리에 미칠 지경이 되면 인근에 사는 가족들 중 누구라도 나서서 아기를 맡아 주어 아기 엄마에게 휴식을 주었다.
그러다가 앨런이 직장을 잃었다. 열심히 새 직장을 구했으나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그에겐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6개월이나 일자리를 찾아다닌 끝에 가까스로 다른 공장에 취직했지만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로 이사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이제 세 살이 된 프랭크와 부부는 도시의 아파트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가진 돈이 없어 폭력과 마약이 난무하는 퇴락한 골목에 겨우 방을 구했다. 직업을 가진 사람도, 이 지역 토박이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가족은 해체되었고 고향에서처럼 일가친척 중 가까이 사는 사람도 없었다. 이제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하는 모든 일은 오로지 엄마의 손에 맡겨졌다.
마리아는 곧 둘째 레온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임신은 첫애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마리아는 작은 아파트에서 아직 꼬마인 큰 애와 온종일 둘이서만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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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레온이 태어났다. 마리아는 너무나 무력한 신생아의 존재에 당황했다. 그녀는 아직 한 번도 아기를 혼자 키워 본 적이 없었다. 마리아의 친지들은 그녀의 모자란 부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개입하여 프랭크에게 예측 가능하고 안전하며 사랑이 넘치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레온이 태어났을 때에는 이런 이성적인 안전망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레온과 프랭크가 왜 이토록 다르게 성장했는지 그 이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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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점차 분명해졌다. 레온이 태어난 지 4주가 되었을 무렵부터 아기 엄마는 이제 네 살이 된 큰 애와 함께 다시 ‘산책’하기 시작했고 아기는 어두운 아파트에 혼자 남겨졌다. 순수하지만 아기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기 엄마가 둘째 아이에게 행한 체계적인 방임을 설명하는 동안 내 심장은 깊고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 비난하기도 어려웠다. 마리아는 네 살 난 큰애를 끝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갓 태어난 줄 때 아이가 건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보살핌을 전혀 주지 않았다.
“아기는 울음을 멈췄어요.”
아기 엄마는 자신이 택한 방법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는 자라면서 프랭크와 달리 전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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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전적인 소인 없이 전적으로 환경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소시오패스의 전형이었다. 정신 의학적 진단으로는 반사회적인격장애(ASPD,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 한다. 형 프랭크와 같은 방식으로 양육되었다면 그도 분명 정상적으로 자라나서 살인이나 강간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 아동을 따로 격리한 어린이집 프로그램을 비롯한 그를 돕기 위한 어떤 시도도 그의 행동을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많은 연구에서 아이를 문제 아동 그룹에 넣으면 못된 행동이 더 가속화된다고 밝혀졌다. 레온은 아동기와 청소년기 내내 ‘특별관리’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으로 따돌려졌으며 그때마다 개입의 역효과가 반복되었다. 특별 프로그램에서 또 다른 반사회적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충동적인 문제 행동이 더욱 강화되곤 했다. 함께 범죄를 모의했고 서루 부추겼으며 서로를 모델로 삼아 문제 해결에는 폭력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단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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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이들은 심하게 왜곡된 감정 체계를 가지고 있다. 사랑의 감정을 완전히 경험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 섹스하기 위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소시오패스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모두 그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사실은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대단히 이기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모두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는다. 그 결과 이들은 상대방이 관심이나 자비를 갈구해도 진심으로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조종해서 권력을 얻기 위한 행동으로 치부해 묵살해 버린다. 소시오패스는 감정적으로 자신의 느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느낌에 대한 인식까지 왜곡해서 생각하며 이를 기반으로 반응한다.
- 《개로 길러진 아이 (원제: The boy who was raised as a dog)》/ 브루스 D. 페리,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 ; 황정하 옮김. 서울 : 민음인, 2011. 167-195 p. -
작풍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메카니스트의 작품은 지금까지 세 편의 장편이 나왔습니다. 반인반수 염라대왕과 불쌍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야수》, 한반도 건국신화를 차용하여 냉혈한 국왕과 복수에 목숨 건 청년이 등장하는 《Toxin》, 현대를 배경으로 고음역대의 노래를 통한 치유능력을 보이는 《Healer》. 세 작품 모두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재의 제약이 없는 판타지는 작가의 상상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장르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바탕으로 촘촘하게 짜인 개연성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한 장르에 특화된 작가라는 꼬리표가 달리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캐릭터의 성격도 같습니다.
염적, 차이석, 흑무천왕은 공격적이고 난폭하며 돈이 많습니다. 고귀한 신분과 높은 권력을 갖고 있으며 안하무인입니다. 전형적인 공의 성격입니다. 이들에게는 태산대왕, 차명환, 라온힐조라는 라이벌이 있으며, 경쟁자는 이들이 사랑하는 연인을 손에 넣고자 노력합니다.
반이와 야바와 로하는 비천한 태생으로 사회적으로 순진하며 가난합니다. 정신적으로 억압받고 육체적으로는 불구입니다. 전형적인 불쌍수 캐릭터입니다. 자기희생을 통한 주인공의 구원도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실제로 반이는 목숨을 버렸고, 아뱌는 목소리를 잃었으며, 로하는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 기관인 백각을 잘라냅니다. 작품이 진행되어 이들의 처지가 나아지자 견제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반이의 형 다환과 야바의 진짜 능력을 알고 있는 코카인, 흑무천왕의 아이를 낳으려는 베론쥬빌입니다.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감정은 억울함과 원망과 분노입니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형에게 구박당하는 반이. 선조의 잘못으로 매일 인간과 짐승으로 변하며 고통받는 염적. 사랑하는 어머니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로하. 심지어 원수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코카인으로 오해받아 거세당하고 감시받는 야바. 정당한 후계자임에도 이복형에게 권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차이석. 등장인물은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감정적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유일하게 자기 맘대로 행동한 흑무천왕은 본인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니 로하가 다가오질 않습니다. 그로서는 억울한 일입니다.
가학성과 잔인함도 공통점입니다. 아버지와 형에게는 학대당하고 염적에게는 애완동물 취급받는 반이,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위해 지속적으로 강간당하고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원수에게 접근하는 로하와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흑무천왕의 잔인함은 끔찍합니다. 남성성과 더불어 진짜 목소리를 잃은 야바는 강기하의 무시와 감시까지 당하며 과대망상증에 시달립니다.
결핍된 인간들의 감정적인 충족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력입니다. 공과 수의 기본적인 배경과 성격을 보면 신데렐라 플롯도 성립합니다. 이렇게 뭉뚱그리고 보니 동일한 소재로 버전만 달리한 변주곡 같습니다. 작품의 종수(種數)가 늘어나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장르, 캐릭터, 설정, 전개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변화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