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숲에서 죽다 (《흐림, 한때 비》소책자 《Fantasia》에 수록, 2002. 11. 24)

작품유형: 뱀파이어물

시대/장소: 1944년/프랑스

커플: 키엘(500세 이상, 뱀파이어, 기다림공), 크눌프 폰 란크로츠(렌, 22, 게쉬타포 장교, 귀족, 부상수)

독일군 게쉬타포 장교로 비밀임무를 띠고 프랑스로 날아온 렌. 귀족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지만 귀족의 권위와 자부심은 버린 지 오래다. 열한 살에 집을 나간 어머니가 3년 후 물에 떠내려 온 후부터 그는 저택에서 약자로 지내며 고용인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왔다. 아버지는 훨씬 전부터 본 적이 없다. 게쉬타포가 된 이유도 국가주의자의 궤적을 쫓은 결과일 뿐이다.

프랑스에서 그가 탄 비행기가 습격을 받고 추락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았으나 엉망으로 다치고 만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운 동굴에 부상당한 채 누워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돌봐주고 있다.

review: 

루크의 개인지 10호 《흐림, 한때 비》의 예약특전 소책자 《Fantasia》에 실린 단편입니다. 이 소책자에 반님의 《두 남자의 하룻밤》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게쉬타포, 레지스탕스 소탕과 같은 키워드가 서두에 보여서 고전적인 첩보물 혹은 홀로코스트같은 새드엔딩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중반부에 이상하게 꼬이더니 뱀파이어물로 결론이 났습니다.

렌을 구해 준 남자는 14세기부터 살아있던 뱀파이어로 당시 마녀였던 라크나란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마력을 가졌던 그녀도 출산 후 약해진 때에 인간들에게 살해당합니다. 남자는 그녀를 죽인 성주의 아내가 낳은 아이와 라크나의 아이를 바꿔치기합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그녀를 기다리며 오백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남자는 그녀의 환생을 여러 번 만납니다. 그녀가 낳은 후예들은 그와 만난 순간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에게 라크나가 되어 달라고 말하는 순간 거부하여 남자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남자에게 연인의 후예는 연인 자체였으나 상대방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렌은 라크나의 마지막 후예입니다. 여자의 후예는 언제나 일대(一代)로 이어집니다. 비행기에서 추락하여 죽을 고비에 처한 것을 남자가 구해 주었으나 렌 또한 그녀가 되는 것은 거부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육체적 끌림이 있음에도 자아는 거부하는 이상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렌을 구하는 과정에서 남자는 렌에게 그의 피를 마시게 했고, 렌은 점차 뱀파이어가 됩니다. 부상에서 회복하고 남자를 떠난 렌은 오랫동안 찾지 않은 고향 저택으로 돌아와 숲으로 들어가 사라집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소년이 청년이 되어 진실을 알아가는 이야기 – 그의 어머니도 남자를 만나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사망함 -  일수도 있고 광기어린 뱀파이어의 집요한 기다림이 상관없는 후예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집착물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둘의 중간에 진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자의 정체에서 오는 반전도 있지만 초기 설정의 허술함은 여러 가지로 구멍이 있습니다. 적당히 읽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