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타 소설에 등장하는 양성구유자 : 어슐라 K. 르귄의 《어둠의 왼손》, 스즈키 코지의 《링》

7. 성에 관한 의문

게센 / 행선 겨울에 관한 제1차 에큐멘 조사대의 조사원 옹 토 오퐁의 조사보고서에서. 에큐멘력 1448년 사이클 93일.

‘1448년 81일.’ 그들은 하나의 실험 결과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런 생각은 별로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실제로 지구 식민지가 있었고, 헤인의 표준형 인간 집단 하나를 원시인류인 토착민이 살고 있는 세계에 실험적으로 이주시킨 증거가 있는 한 적어도 그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인간 유전자의 조작은 식민지 지배자들에 의해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그밖의 어떤 것도 에스의 특징이나 퇴화된 날개를 갖고 있는 로캐넌 종족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게센인들의 성적 생리학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우연히? 그럴지도 모른다. 자연도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의 남녀 동성은 환경에 적응한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거친 세계를 실험 대상으로 골랐을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없다. 티니보솔은 이 식민지를 대간빙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 조건은 그들이 이곳에 정착한 처음 4,5만 년 동안 매우 온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빙하 시대가 다시 찾아오자 헤인인들은 철수하고, 실험지는 식민지의 원주민을 남겨둔 채 버려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게센인들의 성적 생리학을 이론적으로 설명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더욱이 오르고린 지역에 있는 오티에 님과의 교신은 나의 초기 개념들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 주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폐기했다. 내 이론까지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 그 자체이다.

성의 주기는 평균 26일에서 28일(그들은 대체로 26일로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달의 주기에 맞추려는 생각에서인 듯하다)이다. 21일 또는 22일 동안은 성적으로 활동이 없는, 잠재 상태의 ‘소머’이다. 18일째 되는 날 뇌하수체의 작용에 의해 호르몬 변화가 시작되며, 22일째 또는 23일째 되는 날 각자는 ‘케머’, 즉 발정기에 들어간다. 케머의 이 최초 국면인 ‘세헤르’에서 그는 완전한 자웅동체를 유지한다. 성과 발정은 격리 상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세헤르’ 때 만일 혼자 있거나 케머 중인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으면 성적 결합이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성적 충동이 너무도 강해서 그것이 그의 인격 전체를 지배하며, 그밖의 모든 충동을 억누른다. 케머 중인 파트너를 찾으면, 호르몬 분비는 그들 중의 한 사람에게 남성 호르몬 또는 여성 호르몬 지배가 확립도리 때까지 더욱 자극(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접촉 - 분비? 냄새? - 이다)된다. 생식기는 팽창하거나 수축되며, 상대의 변화에 의해서 흥분된 파트너는 자동적으로 다른 성의 역할을 맡게 된다(여기서 예외라면 케머 파트너에게 동일한 성이 나타나는 경우인데, 이런 일은 매우 드물다).

케머의 두 번째 국면 ‘소르하멘’은 성별과 발정이 일어나는 상호과정으로, 외견상 두 시간에서 스무 시간 안에 일어난다. 만일 파트너 중의 한 사람이 완전한 케머에 이르면, 새로운 파트너의 변화는 매우 단축되어 일어난다. 만일 두 사람이 동시에 케머에 들어가면 그 시간은 보다 길어진다. 보통 사람들은 케머에게 성적 역할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자기가 남자가 되어야 할지 여자가 되어야 할지 알지 못하며 실제로 선택의 여지도 없다(오티에 님은 오르고린 지역에서는 선호하는 성별을 갖기 위한 호르몬 유도체 사용이 아주 일반화되어 있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우를 카르하이드 지방에서는 본 적이 없다). 일단 성이 결정되면, 그것은 케머 기간 동안 바꿀 수 없다. 케머의 절정 국면인 ‘소케머’는 이틀 내지 닷새 동안 계속되며, 그 동안 성적 충동과 능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갑자기 끝나 버리는데, 만일 임신이 일어나지 않으면, 두 사람은 몇 시간 내에 소머 국면으로 돌아온다(오티에 님은 이 ‘네번째 국면’이 월경 주기와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기는 새로 시작된다. 만일 여성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임신을 하면 호르몬 분비 활동은 계속되며, 8.4개월의 임신기간과 6개월 내지 8개월의 수유 기간 동안 여성의 성은 유지된다. 소머 때처럼 남성의 성기는 수축되며, 가슴은 약간 부풀고 골반은 커진다. 수유기가 끝나면 여성은 다시 소머로 돌아가며 다시 완전한 남녀 동성이 된다. 생리적 습관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여러 명의 아이를 둔 엄마가 여러 병의 아이를 둔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사회적 관찰> : 아직까지는 매우 피상적이다. 많이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충분한 사회적 관찰을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케머는 늘 하나의 짝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짝은 가장 일반적인 관습인 것 같긴 하지만, 도시의 케머 가정에서는 그룹이 형성되기도 하며 그럴 경우 그룹의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에 집단 성교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보다 극단적인 형태는 케머를 맹세하는 관습인 ‘오스쿄머‘이다. 그것은 일부일처제의 결혼을 의도하거나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법적인 보장은 없으나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매우 고전적인 엄격한 제도이다. 카르하이드의 부족마을과 영지의 전 구조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일부일처제의 결혼에 기초해 있다. 일반적으로 이혼 규칙에 대해서는 뭐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이곳 오스노리너에도 이혼이 있기는 하나 이혼한 뒤 또는 어느 한쪽의 죽음 뒤에 재혼하는 일은 없다. 케머 맹세는 일생에 단 한 번만 할 수 있다.

게센에서는 가계를 ‘육신의 부모’(카르하이드 말로 ‘아마’)인 어머니를 따라서 이어받는다.

근친상간은 형제간에는 몇 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허용되며, 형제간에 케머를 맹세한 짝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형제간에는 케머를 맹세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어느 한쪽이 아이를 가진 뒤에는 케머는 더욱 금지된다. 세대간의 근친상간은 카르하이드와 오르고린에서는 엄격히 금지된다. 남극 대륙의 페룬터 부족 사이에선 이것이 허용된다고는 하나 그들에게 적의를 가진 자들의 독설일 가능성도 있다.

그밖에 알아낸 것은 다음의 거의 전부인 것 같다.

이 비정상적인 모습 가운데는, 어쩌면 적응의 결과일지도 모르는 특징이 하나 있다. 즉, 성교가 오직 임신 가능 기간에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정 주기를 갖고 있는 모든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임신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유아 사망율이 매우 높은 거친 조건 속에서, 종족 보존욕은 강할 수밖에 없다. 현재 게센의 도시 지역에서는 유아의 사망률이나 출생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 티니보솔은 세 대륙의 인구를 모두 합친다 해도 1억이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최소한 천 년 동안은 그 수준에서 안정세를 지속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종교적, 윤리적 금욕과 피임약의 사용은 이 안정세를 유지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우리들이 잠깐 본 것이나 추측한 것만으로는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남녀 동성의 여러 측면들이 있다. 케머 현상은 물론 우리 조사대원 모두를 열광시켰다. 우리들에게는 환상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게센인들을 명백히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 구조, 산업, 농업, 상업의 경영 방식, 그리고 그들의 주거지 규모, 대화 주제 등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소머-케머 주기에 알맞게 형성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그들의 휴가를 가진다. 케머 기간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작업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든 이방인이든 누구나 케머 하우스에 들어갈 수 있다. 모든 것이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고통과 정열의 축제 앞에 길을 내주었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전생애 5분의 4의 기간 동안, 이들은 성적으로 전혀 고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섹스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여지는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게센의 사회는, 그 일상적 기능에 있어서나 그 지속성에 있어서 성(性)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려할 점> : 누구든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 얼른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심리적 효과는 매우 크다. 오티에 님의 말처럼, 17세에서 35세 사이의 모든 사람들이 ‘해산에 매여’ 있다는 사실은, 다른 세계의 여성들처럼 생리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출산에 ‘매이는’일이 이곳에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담과 특권을 거의 동등하게 나누어 갖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선택에 대한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의 남성들처럼 더 자유로운 남성도 없었다.

<고려할 점> :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한 정신적-성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행성 겨울에서는 오이디푸스에 관한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할 점> :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교나 강간은 없다. 인간 이외의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성교는 상호 욕구와 동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관계는 불가능하다. 유혹은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기적으로 아주 적절해야만 한다.

<고려할 점> : 이른바 인간성에 대한 강한/약한, 보호적/피보호적, 지배적/순종적, 주인/노예, 능동적/수동적 따위의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고에 있어서도 이원론에 대한 경향의 정도가 낮거나 둔화되어 있는 듯하다.

<최종 결론> : 여러분은 게센인들을 만날 때, 남자와 여자의 양성 사회에서 하듯 행동하면 안 된다. 그것은 같은 성 또는 반대 성 사이의 양식화되거나 가능한 상호 작용을 기대하고 그와 일치하는 역할을 그들에게 적용하여, 남자 또는 여자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적-성적 상호 작용이 보여 주는 전체 양상이 이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게임을 할 수 없다. 그들은 타인을 남자와 여자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 우리가 맨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그렇다고 여러분은 게센인들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인’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중성인이 아니다. 그들은 양성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완전한 형태로도 갖고 있다. 소머기(期)에 접어든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가 없기 때문에, 초월신을 남성 대명사를 이용하여 부르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나는 ‘그’를 사용한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중성이나 여성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그런 대명사를 사용하다 보면 내가 마주하는 카르하이드인이 인간이 아니라 남녀 동성인이라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행성 겨울에 온 제1차 선발대원은, 그가 아주 침착하거나 나이가 든 사람이 아닐 경우,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 쉬우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남자는 의례 그의 남성다움을 과시하고 싶어하며 여자는 그의 여성다움이 존중되기를 바란다. 그것도 간접적이고 우아하게. 그러나 행성 겨울에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는 오직 하나의 인간 존재로서만 존중되고 판단될 뿐이다. 그것은 사실 소름끼치는 경험인 것이다.

여기에 나의 이론으로 되돌아가 보자. 그러한 실험 - 만일 그것이 실험이라면 - 의 동기를 생각해 보면서, 그리고 우리의 헤인 조상들이 저지른 야만적인 행위와 생명을 물건처럼 다룬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마음에서 나는 몇 가지 추측을 해 보았다.

소머-케머의 주기는 하등동물의 발정 주기로 회귀함으로써 인간을 기계적인 동물의 발정에 종속시키는 어리석은 결과, 즉 퇴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실험을 행한 이들은 아마도, 지속적인 성적 능력을 갖지 않은 인간이 지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른 한편, 성적 충동을 불연속적인 시간캡슐에 제한시키고 남녀 동성으로 소위 ‘평준화’를 이룩함으로써 성적 착취와 욕구 불만을 막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물론 욕구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제 아무리 사회가 그것을 억제하거나 조절한다고 해도 욕구 불만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회가 충분히 커지면 성적 욕구가 충족된 가능성은 그만큼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케머가 끝나면 그것도 끝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지나친 소모와 광기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소머 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인간성을 고양시킬 대상은 있는가? 거세된 사회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들은 거세되지 않았다. 소머로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들은 사춘기 전 단계의 상태에 비교될 수 있다. 거세가 아니라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실험 목적에 관한 또 다른 추측은 이렇다. 그것은 전쟁의 제거에 관한 것이다. 고대 헤인인들은 지속적인 성적 포화 상태와 조직사회의 공격성 - 그것들은 인간만이 지닌 유일한 속성이다 - 이 불가분의 인과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투마스 송 안고트처럼 전쟁을 순전히 남성의 배설 행위, 즉 대규모의 강간 행위로 본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들의 실험에서 강간하고 싶은 남성의 욕구와 강간당하고 싶은 여성의 욕구를 영원히 제거하려 한 것은 아닐까?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게센인들은 그들 사회가 매우 경쟁적이긴 했지만(체면과 경쟁을 위해서 제공된 정교한 사회적 방침에 의해서 입증되는 것처럼), 그렇다고 그다지 공격적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전쟁이라 할 만한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서로 한두 명씩 죽이는 일은 더러 있지만, 열 명 스무 명 또는 수백 몇 수천 명 규모의 살육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양성을 갖고 있는 그들의 심리와 아무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후 풍토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사실 행성 겨울의 날씨는 너무도 잔인하다. 어쩌면 그들의 투쟁정신을 추위와의 싸움에 다 태워 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의 추위는 적응하는 동안 거의 인내의 한계점에 이르게 된다. 변방의 주민들과 외진 곳에서 근근이 살아 가는 종족들은 좀처럼 전사가 될 수 없다. 결국 게센의 생활을 지배하는 요소는 성이나 어떤 인간적인 요소가 아니라 바로 그 환경, 그들의 추운 세계였다. 이곳 사람들은 그들 자신보다 더 무서운 적을 갖고 있었다.

나는 평화로운 치프워의 여인이다. 그리고 폭력이나 전쟁의 본성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이 문제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행성 겨울에서 겨울을 보내고, 빙하지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승리니 영광이니 하는 따위를 주장할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 《어둠의 왼손 (원제 : The left hand of darkness)》/ 어슐러 K. 르귄. 시공사, 1995. 115-123 p. -      

책 소개에 앞서 본문을 먼저 올렸습니다. 워낙 인상적인 내용이라 한 챕터를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아래는 줄거리와 간단한 리뷰입니다.

네뷸러상․휴고상 수상

인간의 삶을 양분하는 최초의 결정인자 남과 여.

그 희비극의 씨앗을 넘어선 세계의 신비로운 이야기

인류의 평화를 추구하는 우주연합 에큐멘의 외교사절 겐리 아이는 단신으로 행성 ‘겨울’의 키르하이드를 방문한다. 지구의 극지방보다도 혹독한 추위.

26일마다 남녀 변신이 가능한 독특한 생물학적 구조의 사람들…….

지구의 남성 겐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관심과 의혹 속에서 카르하이드의 우주연합을 추진하고, 그에게 동조하는 총리대신 에스트라벤은 왕을 설득한다. 그러나 왕권 약화를 두려워한 왕과 귀족들의 음모로 반역자로 몰린 겐리와 에스트라벤. 추방당한 겐리는 이웃 오르고린으로 건너가지만, 권력 투쟁에 희생되어 영문도 모르는 채 오지의 강제수용소에 갇힌다. 한편, 에스트라벤은 겐리의 소식을 알아내 비밀리에 구출 계획을 세우는데……

《어둠의 왼손》은 SF와 팬터지, 페미니즘을 성공적으로 접목시켜, SF 페미니즘 소설의 진수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침입과 정복을 중심으로 한 일반 SF와는 달리, 풍부한 문학적 감성과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화의 창조로 SF의 문학적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르 귄은 이 작품을 통해 빛과 어둠, 오른손과 왼손, 남자와 여자, 과학과 종교, 삶과 죽음 등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인간의 삶에 내재된 ‘이중성’을 형상화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작품의 핵이 되는 게센인들의 자유로운 성性의 변용變容은, 성적 차이로 인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를 제시해 페미니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찬찬히 읽다보면 상식을 뒤엎는 발상의 전환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SF 페미니즘 소설로 첫손 꼽히는 이유는 성의 변화에 따라오는 각종 문제를 한 행성(비록 가상 행성이지만)의 사회와 인류의 문제로 확대했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남자의 구분이 없는 사회, 성인 누구나 아이를 낳는 사회, 모두에게 양육의 책임이 있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는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게센인들을 만날 때, 남자와 여자의 양성 사회에서 하듯 행동하면 안 된다. 그것은 같은 성 또는 반대 성 사이의 양식화되거나 가능한 상호 작용을 기대하고 그와 일치하는 역할을 그들에게 적용하여, 남자 또는 여자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적-성적 상호 작용이 보여 주는 전체 양상이 이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게임을 할 수 없다. 그들은 타인을 남자와 여자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 중략 -

행성 겨울에 온 제1차 선발대원은, 그가 아주 침착하거나 나이가 든 사람이 아닐 경우,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 쉬우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남자는 의례 그의 남성다움을 과시하고 싶어하며 여자는 그의 여성다움이 존중되기를 바란다. 그것도 간접적이고 우아하게. 그러나 행성 겨울에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는 오직 하나의 인간 존재로서만 존중되고 판단될 뿐이다. 그것은 사실 소름끼치는 경험인 것이다.

인용한 챕터가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형식으로 만들어진 보고서라는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작가는 감정이나 느낌에 호소하기보다 사실과 현상을 나열하면서 게센 행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독자가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아사카와, 재미있지 않냐? 세포 속의 유전자가 튀어나와 다른 생물이 되다니. 상반되는 것들 모두가 그 근원에 있어서는 동일했을지도 몰라. 빛과 어둠 역시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는 사이좋게 모순 없이 동거하고 있었어. 신과 악마도 그랬지. 요컨대 추락한 신이 악마라고 불리게 됐을 뿐 근본은 같아. 남과 여 역시 그래. 원래 모습은 지렁이나 달팽이처럼 여성 성기와 남성 성기를 동시에 갖추고 있었던 거라구. 그거야말로 완벽한 힘과 미의 상징이라고 생각되지 않냐?”

류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헤헤헤, 섹스하는 수고를 더는 거니까 편한 거지.”

뭐가 우스울까 하고 아사카와는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여성 성기와 남성 성기를 함께 갖춘 생물이 완전한 것일 리 없다.

- 《링 (원제: リング)》/ 스즈키 코지. 씨엔씨미디어. 1998. 267-267 p. - 

…행위가 끝나자 사다코는 강렬한 시선을 내게 고정시킨 채, 위를 보는 자세 그대로 두 무릎을 세우고 팔꿈치를 교묘하게 이용해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몸을 보았다.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깃구깃해진 회색 스커트를 허리깨로 휘감은 채, 드러난 가슴 언저리를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려는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로 휙 햇빛이 비치자 작고 거무스름한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들어 가슴 언저리를 보았다… 거기에는 탄력있는 유방. 다시 한번 시선을 내린다… 음모로 뒤덮인 치부 안쪽에는 완전히 분화되어 발육된 고환이 붙어 있었다.

만일 내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놀란 나머지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예전에 그와 같은 예를 텍스트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고환성여성화증후군(睾丸性女性化症候群). 매우 드문 증후군이어서 텍스트 이외에,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남성가성반음양(男性假性半陰陽)의 하나인 고환성여성화증후군은 외관상으로는 완전히 여성의 몸으로 유방, 외음부, 질은 갖고 있지만 자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성염색채는 XY로 남성형. 그런데 이 증후군의 사람은 모두 미인인 것이다. 

- 《링 (원제: リング)》/ 스즈키 코지. 씨엔씨미디어. 1998. 281 p. -

분명 그녀는 여기에 있다. 희대의 초능력자이자 고환성여성화증후군의 여인… 아니 여인이라고 하는 말은 적합지 않다. 생물학적인 남녀의 구별은 생식선의 구조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를 가지고 있어도 생식선의 구조가 고환이라면 그것은 남성이라는 얘기가 된다.

도대체 야마무라 사다코를 남자라고 불러야 할까, 여자라고 불러야 할까, 아사카와는 알 수 없었다. 사다코라는 이름을 보면 부모들은 그녀가 여자로서 자라기를 바랐음에 틀림없다. 오늘 오전, 아타미를 향하는 배 안에서 류지는 이렇게 말했다. …남성 성기와 여성 성기를 함께 갖춘 인간, 그것은 완벽한 힘과 미의 상징이야.

그러고 보니 일찍이 미술 전집 안의 고대 로마 조각을 봤을 때 아사카와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성숙한 여자의 아름다운 나신이 돌 위에 길게 누워 있는데, 그 사타구니에서는 멋진 남성의 성기가 들여다보였던 것이다….

- 《링 (원제: リング)》/ 스즈키 코지. 씨엔씨미디어. 1998. 304 p. -

희대의 초능력자이며 완벽한 여성의 외모에 다 자란 고환을 갖고 있었던 사다코. 그의 초능력의 원천이 육체의 비밀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예로 든 작품들이 모두 장르 문학 - SF와 호러 - 이라 이번에는 순수 문학을 찾아봤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양성구유는 아니지만(양성경험자?) 남자에서 여자로 변신하는 올란도는 성정체에 의문을 품습니다.

<진리!>

그 소리에 올란도는 잠을 깼다.

그는 기지개를 켰다. 일어났다. 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우리 눈앞에 섰다. 그리고 나팔소리가 진리! 진리! 진리!라고 울려 퍼질 때, 우리는 다만 명백히 알려 줄 수 있을 뿐이었다 - 그는 여자였다고.

나팔소리가 멀어지고 올란도는 나체로 서 있었다. 천지개벽 이래, 아직 이 모습보다 더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을 본 자는 없을 것이다. 그의 모습은 남성의 힘과 여성의 우아함이 하나로 융합된 것이었다. 그가 거기에 서니 은나팔 소리가 오랫동안 울렸다. 그 울림이 불러일으킨 아름다운 광경을 떠나기를 안타까워라도 하는 듯이. 그리고 <순결>․<청정>․<겸양>은 <호기심>에 의해 충동되었음에 틀림없다.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이 발가벗은 몸에게로 타올 같은 옷을 던져주었는데, 불행히도 그 옷은 몇 인치쯤 모자라는 곳에 가 떨어졌다. 올란도는 불안한 기색도 없이 기다란 거울에 비치는 자기를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걸어나갔다. 아마 목욕하러 갔겠지.

이 사이에 조금 적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올란도는 한 사람의 여성이 된 것이다 -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점에서는, 올란도는 꼭 그전 그대로였다. 성전환(性轉換)은 그 다름의 생애를 변경시키기는 하나 동일인이란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초상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얼굴 생김은 조금도 다름 없는 전 그대로다. 그의 회상은 -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는 습관에 따라, <그의>라고 하지 않고 <그녀의>라고 하고, <그> 대신에 <그녀>라고 해야 한다 - 따라서 그녀의 회상은 아무런 장해도 받지 않고 그녀의 지난날의 모든 사건을 더듬을 수가 있었다. 어딘지 막연한 데가 있긴 해도, 맑디 맑은 회상의 샘에 몇 방울의 시커먼 방울이 떨어진 것 같은 것이다. 다소 모호하게 된 것이 있긴 해도,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는 일이다. 성전환은 올란도 자신도 전혀 놀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월하게, 그리고 충분히 수행된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점을 생각해서, 이런 성의 전환은 자연율(自然律)에 어긋나는 것으로 믿고, 올란도는 처음부터 하나의 여성이었다고 하는 사실과, 올란도는 지금도 하나의 남성이란 사실을 증명하려고 비상한 고심을 했던 것이다. 생리학자나 심리학자에게 이런 문제를 결정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에겐 단순한 사실만 기술하면 되는 것이다 - 올란도는 나이 30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남성이었다 - 그리고 그가 여성이 되자, 그후 줄곧 여성이었단 사실을.

- 《올란도 (원제: Orlando)》/ 버지니아 울프. 평단문화사. 1994. 126-127 p. -

「그리고 그 저주가, 내가 말하는 마지막 저주가 되겠지.」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한 번 영국에 발을 디뎌 놓으면. 남자의 머리를 치는 것도, 얼굴을 마주보고 남의 거짓말을 비난하는 것도, 칼을 뽑아 상대의 허리를 찌르는 것도, 귀족들 틈에 섞여 있거나, 관을 쓰거나 행렬에 가담하는 것도, 사형을 선고하는 것도, 군대를 지휘하는 것도, 군마를 타고 화이트홀가(街)를 의기양양하게 나아가는 것도, 가슴에 72개의 메달을 다는 것도 이제 다시는 할 수 없게 된다. 일단 영국의 땅을 밟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차를 따르고, 전하의 뜻을 받드는 일이다. 설탕은 필요없으세요? 크림은요?」이런 말을 정중하게 해보면서, 일찍이 자기가 남자인 것을 자랑하였던 그 남성다움을, 남성을, 자기가 얼마나 경멸했었는지를 깨닫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돛대 위에서 떨어지다니,」그녀는 생각했다. 「여자의 뒤꿈치를 보느라고. 여자의 칭찬을 받고 싶은 생각에서 가이 포크스의 상(像)처럼 성장해서 거리를 활보하고, 여자가 조소하면 안 된다고 여자에겐 공부도 시키지 않고, 더할 수 없이 약한 계집아이의 속옷 안에서 노예가 되면서, 만물의 장인 것처럼 걸어다니고 있다 - 정말, 하느님 맙소사!」그녀는 생각했다. 「왜 남자는 여자를 희롱하는 것일까 - 여자란 도대체 왜 그렇게도 어리석은 것일까!」이래서 그녀의 말에는 알 수 없는 데가 있다. 자기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처럼, 남녀 양성을 다같이 욕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은 어느 쪽도 아닌 기분이다. 그녀는 남자다. 그러면서 또 여자다. 그리고 양성의 비밀을 알고 있다. 양성의 약점을 알고 갖고 있다. 그것은 그지없이 눈부시고, 빙빙 도는 정신상태다. 무지(無智)의 기쁨은 그녀에겐 전혀 얻을 수 없는 것. 그녀는 질풍을 탄 깃털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한쪽을 다른 한쪽과 비교해서 불쌍하게 여기고, 양성에 골고루 슬퍼할 결점을 발견하며, 게다가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명히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 그래서 닻이 바다 속에서 커다란 거품을 내며 떨어질 때, 터키로 돌아가서 한 번 더 짚시가 되고 싶다고 울상이 된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올란도 (원제: Orlando)》/ 버지니아 울프. 평단문화사. 1994. 144-145 p. -

서른 살까지 남자로, 그 이후의 생은 여자로 살아간 올란도의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함께 욕하는 약간은 맛이 간 상태입니다.  

장르 문학 얘기가 나와서 약간 더 추가합니다. 남자에서 여자로 변하는 대표적인 판타지 작품으로 전동조의 《묵향》, 만화로는 《란마 1/2》이 있습니다. 신일숙의 《리니지》에 등장하는 요정의 왕이자 데포로쥬 왕자의 제1기사 질리언도 보름이 되면 아름다운 달의 아가씨 오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