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교향곡 No.9(대현문화사, 2003)
자, 리드해 봐.
기현이 내 주문대로 왼손으론 내 허리를, 오른손으론 내 왼손을 잡고 리드하기 시작한다.
쿵 짝짝, 쿵 짝짝…….
기현의 머리는 쏟아지는 찬비에 산발이 된다.
물론 내 머린 더 하겠지?
그렇게 우린 텅 빈 저녁 공원에서 찬비를 온몸으로 받으며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벤츠의 헤드라이트가 조명이 되어 준다.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바짝 밀착된 우리의 몸에선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쿵 짝짝, 쿵 짝짝…….
눈에 들어오는 세상은 온통 장밋빛이다.
난 기현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 있다.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고향으로 향하고 있을 기우사 아저씨의 모습을 머리에 떠올린다.
오, 뷰티풀 이브닝.
"난 말이야……."
감미로운 톤으로 기현이 말한다.
"네 신작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었어.
네 소설 속의 내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연애기를 무척 읽고 싶었다구."
날아가 버린 원고에 미련이 많이 남는 모양이다.
하지만 과거는 고거일 뿐.
내겐 영원히 벗어나고 싶지 않은 현재가 펼쳐지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하고 싶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기현과 눈이 마주친다.
걱정하지마.
내 속을 벌써 읽어버렸는지 그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냥 그를 위로하려 무심코 던진 말은 아니다.
우리의 스토리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