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 

중독된 사랑(푸른터, 2003)

<인영아...>

동민의 목소리였다.

이라이의 품에 안겨 그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던 인영의 귓가를 두드린 것은 동민의 목소리였다. 인영은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듯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이라이의 머리를 바라보며 인영은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동민의 얼굴이 인영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자 인영은 잊어버리려는 듯 눈을 감고, 이라이가 토해 내는 작은 숨결에 온 몸의 신경을 모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영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맞은 편 탁자에 놓여 있는 꽃병이 눈에 들어왔다. 야생 들국화가 꽂혀 있던 꽃병... 야생 들국화...

“거봐 형... 걱정하지 말랬잖아... 에보시 누나는 착하니까... 그러니까...

절대 형 외롭게 하지 않을 거랬잖아.“

묘비를 가슴에 끌어안은 사또의 목구멍을 타고 피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사도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인영은 울음을 참기 위해 품속의 아기를 더욱더 세게 안았다.

<아가야... 아가야...>

제 부모의 비극은 알리 없다는 듯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는 인영의 작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더 이상 무라카미 집안에 비극은 없을 거야. 내가 그렇게 할게. 약속해.

나 에보시가 무라카미 황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네가 울지 않도록 그렇게 지켜주마.“

머리위로 쏟아지는 빗물을 고스란히 맞으며 내려오는 인영의 얼굴과 마주한 아기의 얼굴이 마치 웃고 있는 듯 느껴지자 인영 역시 눈물을 거두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행복하자. 행복하게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