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고운

소설

1%의 어떤 것(눈과 마음, 2002)

고집불통 재인은 악당 같은 할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여선생과 10개월 계약 약혼을 하게 되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쉽고 만만하리라 생각했던 여선생은 예상보다 훨씬 영리하고 맹랑하기만 하다. 재인의 차가운 얼굴과 싸늘한 어투에 눈썹 하나 깜빡 않고 그의 염장을 지르는 그녀. 재인의 경멸 어린 비웃음에 미소까지 지으며 두 배는 더한 빈정거림을 잊지 않는 그녀.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그의 약을 바짝바짝 올리는 그녀…… 한 마디로 강적이었다.

심술궂은 할아버지보다 순진한 표정의 그녀가 재인에게는 더 힘든 상대인데…… 차리리 방긋방긋 웃지나 않으면 정이나 들지 않고 좋으련만. 결혼이라면 질색을 하던 재인은 이제 그녀를 꿈꾼다.

review:

작가는 흔한 소재를 사용할 때 일정부분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비슷한 유형의 작품은 많이 접할수록 플롯이 패턴화해서 독자들은 쉽게 질립니다. 이 작품은 유언장과 중매라는 소재가 사용되었습니다.

유언장(遺言狀), 유언(遺言), 유산(遺産), 유지(遺旨)……. 유(遺)자가 들어가는 단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작품에 소재로 사용되어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지만 몇 작품만 꼽아보겠습니다. 제인 앤 크렌츠의 《붉은 장미의 유혹, 흰 장미의 사랑 (원제: Grand passion)》, 이채은의 《황홀한 키스》, 린 그레이엄의 《비밀스런 아내 (원제: The secret wife)》, 카렌 로즈 스미스의 《황홀한 백야 (원제: The Marriage Clause)》가 있습니다. 중매 또한 흔한 소재입니다. 특히 할아버지의 중매는 노라 로버츠의 《맥그리거 시리즈》와 구자영의 《천사와 사랑을》이 있습니다.

중간중간 강조되는 인과(因果)·보은(報恩) 논리,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여주에 의해 깔끔하게 정리·요약되는 사건의 전말이 문학작품이라기보다 요약된 리포트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여운이 없습니다.

흔한 소재가 사용된 점이 아쉽지만 그럭저럭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9,500원의 책값은 내용과 분량 모든 면에서 비쌉니다.

PS: 책을 구입하면 커버를 모두 벗기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도 벗기고 보니 뒷장의 Story line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가능하면 내지에도 Story line을 인쇄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울러 책갈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처럼 하드커버로 출판했는데 책갈피가 있으면 책장을 접을 필요도 없습니다.

운명 사랑하기(눈과마음, 2003)

남자 때문에 허둥거리는 것은 그녀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한 번쯤 스친 그 남자 때문에 잠을 설치고 그 사람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그녀는 모른다. 왜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그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알고 있다. 그 남자, 김대운이 나의 남자라는 것을 그녀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운명이다. 그렇지만 상처받은 그 남자는 사랑 따위는 인정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갈 길은 멀고 그는 더 멀리 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죽을 만큼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 만큼 깨지더라도 운명 안에 나의 사랑이 있다. 이제 효은은 운명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령과 토마토(눈과마음, 2003)

"정말…… 당신 유령이에요?"

아무도 없어야 할 방 안에 떡하니 공중에 떠 있는 저 잘생긴 남자가 유령이 아니라고 해도, 진짜 유령이라고 해도 걱정이다. 유령이 아니라면 지금 내 몸이 심각하게 허해져서 정말 헛 게 보이는 실성 상태이고, 유령이라면 그때는 어찌해야 할지 대책이 안 선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친 것보다는 유령을 보는 게 나을 듯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하지만 여전히 거기 그가 있다. 희미하게 또 투명하게 허공에서 그가 보인다. 결국 꿈도 아니고 헛 것도 아니었다. 정말 유령이 내 눈에 보이는 거야. 오무 마이 갓.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내게 일어나는 거야. 내가 벼락을 맞은 것도 아니고 신이 들린 것도 아닌데, 조금 미쳤나. 미쳤으면 어떡하지?

엄마, 어쩌면 좋아.

그녀는 그렇게 유령을 만났다.

인연찾기(눈과마음, 2004)

“정혼이라구?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야?”

코웃음 치는 목소리였다. 시대착오적. 알고 있기는 하지만 머릿속에서 잘 떠오르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이었다. 아무래도 저 남자가 나의 바람둥이 약혼자인 모양이다.

짧은 머리, 짙은 눈썹, 화가 난 듯한 눈빛, 꾹 다문 입술. 그도 나만큼이나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다행히 한 가지 공통점은 있군."이라고 생각할 때, 그 남자의 입에서 아주 새로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쪽 부모도 손들어서 보낸 생날라리야.”

생날라리. 저 남자가 지금 나보고 생날라리라고? 한 번 보지도 못한 여자를 그런 식으로 매도하겠다고? 그것도 어쩜 자신의 천생연분이 될지도 모를 여자한테. 애초부터 한 번 보지도 못한 날건달이라는 약혼자한테 무슨 특별한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그녀와 정혼이라는 한 배를 탄 매력적인 바람둥이는 약혼자가 아니라 타도 대상이라는 걸 상은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한량(눈과마음, 2002)

한량이군! 눈앞에서 미소짓는 잘 생긴 남자의 정체는 척하면 딱이다.

난 쌍꺼풀 있는 남자도, 보조개 들어가는 남자도, 게다가 눈웃음 치는 남자도 모두 질색인데 그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는 이 남자에겐 그를 싫어하거나 미워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순진한 바보라도 저 눈빛에서 빛나는 바람기를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당연히……이걸로 끝이다!

한량이라! 드디어 나를 알아보는 여자가 나타났다.

나라면 질색을 하고 도망 다니는 현명한 그녀를 꼬시는 일이야말로 도전의식이 마구 솟는 즐거운 일이다. 노련한 테크닉과 타고난 매력으로 작업을 완성하려 하지만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곰의 탈을 쓴 여우 같은 여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천하의 한량에게 끝이라니……어림없는 일이다!

드라마

1%의 어떤 것 리메이크 (2016. 10. 5일부터 Dramax 수목 밤 9시 방송)

이재인/한석진분(32, 재벌3세, SH알펜지아 호텔 대표이사)

김다현/전소민분(김다다, 26, 초등학교 교사)

review: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한 매체만을 감상하고 마는 습관이 있습니다. 두 번째 매체를 접하면 원작이든 각색이든 둘 중 하나는 단점이 두드러져서 기분좋은 감상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3월부터 시작된 TV집중시청이 뜻밖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드라마 몇 편 리뷰가 나올 것 같습니다. 혹시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면 소설 / 드라마 공동 리뷰도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현고운 작가의 소설 《1%의 어떤 것》은 2002년에 리뷰를 썼고, 강동원 주연의 2003년 드라마 《1%의 어떤 것》은 보지 않았습니다. 2016년 Dramax에서 리메이크한 《1%의 어떤 것 리메이크》는 한달 쯤 전에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시청할 당시 예전에 소설을 읽었었고 리뷰도 썼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작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각본은 2003년과 마찬가지로 현고운 작가입니다.   

3회 중반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발단 부분을 몰라도 이성애 로맨스에서 젊은 재벌과 평범녀의 밀당 클리셰는 장르화 되어서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재벌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와 결혼해야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이재인은 분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금시초면의 오만한 남자와 결혼 얘기가 오가는 것도 어이상실인데, 남자는 자신을 돈을 바라고 노인을 유혹한 여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남자와는 두 번다시 보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성장의 비밀(출생의 비밀이 아님)이 있는 재인은 상속을 받아야 하고, 할아버지를 설득하여 결혼 대신 교제로 유언장의 조건을 변경합니다. 노예 계약에 묶여 있는 아이돌 제자를 위해 유능한 변호사가 필요했던 다현은 재인과 교제를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는다는 계약서를 주고 받습니다.

보통의 로맨틱코메디 드라마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기존의 드라마는 두 사람의 만남과 사귐에 시간이 걸립니다. 서로를 인식하고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건과 사고가 맞물려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교재를 전제로 시작되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둘의 연애가 주를 이룹니다. 주변인의 스토리와 배경 설명도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애를 제대로 합니다. 돈만 아는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진부한 소재로 이만한 흡인력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남녀 주인공의 연기가 커버하고 있습니다.

하석진씨는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에서 바람둥이 의사로 나온 몇 장면만 기억나고, 예능은 《문제적남자》몇 편 본 것이 다입니다. 전소민씨는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두 배우 모두 기존 이미지 없이 봐서인지 케미가 좋았습니다. 이번 연휴에 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소설보다 드라마가 낫습니다. 소설의 부실한 묘사를 화면의 선남선녀가 살리고 있습니다. 더불어 2002년 배경의 소설보다는 2016년 배경의 드라마가 현실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는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던 디테일한 설정이 있습니다. 시간 나면 한 번 시청해 보십시오.

PS: 2003년 오리지널 드라마 《1%의 어떤 것》도 시도했는데, 강동원의 리즈시절임에도 발연기가 심해서 끝까지 볼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