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하

연애(세림, 2003)

“사랑해 보셨어요?”

“............”

야준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유신은 야준을 많이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는 도연의 말이 생각났다.

“아무 것도 해 주는 게 없는데도 내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남자 인 것처럼 한결 같이 바라보는 여자. 남자라면 쉽게 못 잊습니다.

운명처럼 버리거니 헤어질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잊혀지는 건 아닙니다.

당신이라면요? 평생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나도 ... 사랑해.....”

야준이 도연의 품에 안기며 들리지도 않게 속삭였다.

남자들은 항상 잘난 척을 하다가도 사랑한다는 한마디 하면 남자의 자존심이 땅에 곤두박질치는 줄 안다.

그러나 여기저기 남발하는 것 보다 아주 가끔 이렇게 들리지도 않게 중얼거리면 진짜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속없는 여자는 오늘도 남자의 감언이설에 속는다. 그녀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남자의 키스에 입을 헤벌쭉 벌리고 말았다.

청혼(세림, 2003)

“은영아…….”

이름을 부르자 석현의 목을 감은 은영의 손이 떨렸다.

“어떡해……난 이제 아이도 못 낳아…….”

은영의 속삼임은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석현은 은영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괜찮아. 난 아이 같은 거 필요 없어.”

석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석현의 본심이었다.

“난 너만 있으면 돼.”

헤어진 남편의 말은 너무나 서러웠다.

“난 이제 여자도 아냐.”

“미안해. 내가 바보야…….”

헤어진 남편에게 미안하단 소릴 듣고 있자니 한강 물에라도 빠져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너무 비참했다.

석현은 품안에 안겨있는 은영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은영의 눈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었다.

은영의 입술이 말라있었다. 석현은 주저 없이 은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대었다.

처음에 마른 입술만 적셔주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떨리는 여자의 입술이 느껴지자 석현은 은영이 힘든 수술을 한 아픈 환자라는 것도 잊고 격하게, 삼킬 듯이 키스해버렸다. 감정을 주체하기가 너무 힘겨웠다. 인간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