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인

빗방울 전주곡 (대현문화사, 2002)

얼떨결에 내 아이를 키우게 된 아기 유모 윤서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찔끔거리는 여자.

여기저기 물건들을 늘어놓고 다니는 여자.

나의 넓은 침대가 편하다고 아기와 함께 벌러덩 누워 잠이 드는 여자.

왠지 이 여자가 맘에 든다. 내 아이의 유모, 윤서이. 이 여자가 맘에 든다.

그녀의 눈물이 그립고, 정돈되어진 방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가 맘에 든다.

그녀의 맘속에 자리잡은 옛사랑의 그림자를 몰아내고 싶다.

그녀의 맘속에 바로 나, 차준혁이 들어가고 싶다.

review:

의문에 휩싸인 채 미숙한 글을 읽는 것은 고문입니다. 스스로 고통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중간에 덮고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아무리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끝까지 읽어야 하는 성격에 이 작품이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가세해서 마지막까지 읽었습니다. 몇 가지 의문 사항이 있습니다.

의문 1. 아이까지 낳고 사랑하는 남자를 묻은 여주의 정신 연령은 과연 몇 살인가?

"아프다고요! 사람 말이 들리지 않아요? 아저씨! 아니, 사장님! 우리 오빠는 서이가 피나면 입으로 빨아줬다고요? 이 몰인정한 아저씨야! 아니, 이 몰인정한 사장님아!"

- 중략 -

"오늘 낮에요, 진성 오빠가 서이랑 진서 데리고 쇼핑하고요, 밥도 사주고요, 그리고 진서 옷도 사줬어요. 어때요? 예쁘죠? 진성 오빠가 진서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몰라요."

- 중략 -

"그 여자가요, 서이 가슴 보더니 탁자 위에 압정 두 개 올려놓은 거 같다고 했다고요. 서이는 가만히 있었는데, 그 여자가 서이 욕하고 우리 진서 욕하고. 나쁜 여자예요. 혼내주실 거죠? 그쵸?"

- 중략 -

'이제 안 놀아 줄 거야. 이제까지 놀아 줬더니 서이랑은 이제 안 놀아 주고. 바보, 바보, 바보, 준혁 오빠!'

--> 과연 성인 여자가 할 만한 말인가 궁금해집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여자가 이런 말을 태연히 한다면 그 얼굴을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의문 2. 서이는 만삭의 몸이 될때까지 왜 진우와 결혼하지 않았나? 서이의 오빠가 두 번째로 임신한 서이와 준혁에게 결혼을 강요했듯이 서이의 첫 남자인 진우에게는 왜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나? 두 사람이 결혼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면 그 사연은 왜 작품에 언급되지 않았나?

의문 3. 서이의 오빠 서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여동생을 결혼도 하지 않은 남자의 집에 놔둔 채 태연히 외국으로 떠날 수 있었는가?

"죽었어, 알아? 네가 그렇게 사랑해마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 녀석은 죽었다고, 알아? 그 녀석은 과거에 있어. 그리고 넌 지음 미래에 있어. 웬 줄 알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 녀석은 죽었고, 넌 살아 있기 때문이야. 알겠어? 이 미련한 여자야!"(《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인용)

- 중략 -

보란 듯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거실로 나간 서이는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가방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장난감, 신문, 준이의 기저귀……. 가방이 한가득 하자 서이는 준이를 들춰 업고는 진서와 준서를 이끌고 현관문으로 향했다.(짐을 싸는 서이의 모습은 텔레비전에 나왔던 왕종근 씨 부부의 사연을 참고하였습니다.)

작품 중간에 다른 작품을 인용한 표시가 있는데, 작품을 읽다가 이런 부분이 나오면 독자는 현실 세계로 돌아오고 흥미는 반감됩니다. 차라리 작가 후기에서 언급하는 것이 낫습니다.

오타도 있습니다.

죽은 인간이 차준혁보다 뭐가 났다고(--> 낫다고) 그렇게 잊지 못하고 그림을 그려 대고, 밤마다 불러 대는 건지.

- 중략 -

"씨받이라…… 그건 조금 어패가(--> 어폐가) 있군,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이렇게 어이없는 작품을 대해보기는 처음입니다.

천상연(푸른터, 2003)

정적. 시끄럽게 쏟아지던 빗소리가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간간이 들리던 지나가던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유민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입술 선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서서히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내려와 살포시 닿았다.

떨림. 

비에 젖어 손이 그렇게 떨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수십 번, 이제 수백, 수천 번 그녀와 입맞춤을 나누었건만 이 떨림의 정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격렬함.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잊었다.

단지, 그와 그녀뿐이 존재 할뿐이었다.

남김없이 서로의 숨결을 마시기라도 할 것처럼 격렬한 키스에 몰입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쏴아하고 쏟아지던 소나기가 멈추고 주변이 조용해지고서야 그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