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빈

독립선언(청어람, 2004)

“집을 나가서 살고 싶다고?”

허연 백발에 상투까지 튼 할아버지가 아랫목에 앉아 있고, 왼쪽 편에는 옥비녀로 곱게 쪽을 진 할머니와 그 오른쪽 편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단정한 머리를 한 남자가 둘러앉아 있다. 그 한가운데 긴 생머리를 한 묶음으로 정갈하게 묶은 여자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네, 할아버지.”

“나가려는 이유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음, 그럼 일 년만 지켜보도록 하자. 대신 조건이 있다. 원래 여자가 집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출가했을 때뿐이다. 그런데 넌 결혼에는 관심도 없으니, 일 년 후에도 네게 남자가 없다면 이 할아비가 짝지어주는 사람과 결혼하겠느냐?”

“하, 할아버지, 그런 억지를…….”

“네가 독립을 접고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올 때는 서른이다. 할아비는 더 두고 볼 수가 없구나. 그 조건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내보내 줄 수 없다. 더 할 말 없으면 나가보거라.”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뜻에 따르겠습니다.”

굳게 결심한 듯 힘주어 말했다. 할아버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는 손녀의 비장함마저 깃들어 있는 얼굴을 보고 할아버지는 고개만 끄덕거리실 뿐이었다.

결혼이라, 어쨌든 이 답답한 집을 벗어나는 또 하나의 탈출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소개해 주는 사람이면 만나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다. 할아버지의 사람 보는 눈은 언제나 정확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