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현

누나와 나, 혹은 그녀석과 나 (눈과마음, 2002)

선우는 새삼 자신의 동거인 연수를 훑어보았다. 며칠 동안 감지 않은 기름기 자르르한 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꾀죄죄한 집주인을. 정말 여자이기를 포기한 것 같아 보이는 여자다. 7년 전에 보았을 때는 상큼해 보이던 여대생이었는데……

자기를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훑어보는 그 녀석을 연수 역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금갈색으로 물들이고, 귀에는 구멍을 여러 개 뚫은 데다가 뚫린 만큼 귀걸이도 했다. 목에는 여러 줄의 목걸이와 수첩 같은 것이 걸려 있었고 팔에는 팔찌, 손가락에는 반지, 입고 있는 청바지는 처참하게 찢어진 요란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연수는 한눈에 그 녀석이 날라리임을 알아보았다.

review:

누군가 《누나와 나, 혹은 그녀석과 나》에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미운 정'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사사건건 부딪히고 별의별 사건을 겪다가 미운 정이 들어버린 남녀의 모습이 작품에 잘 살아 있습니다. 특히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주의 캐릭터가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말문을 닫은 부잣집 도련님에 사회부적응자인 남주가 어떻게 여주와 사랑에 빠졌는지에 대한 설명(남주의 심리)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쉽게 읽히지만 쉽게 잊혀집니다.

이 작품은 가운뎃점(·)을 드러냄표로 사용했습니다. '올바른 문장부호의 사용'은 구자영의 《내 아내는 보스》에서 다루었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문장부호의 남용 - 특히 드러냄표와 느낌표, 작은따옴표에 의한 단어와 문장 강조의 남용 - 이 불러오는 폐해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프롤로그(5건), 1장(4건), 2장(6건), 3장(7건), 4장(3건), 5장(3건), 6장(1건), 7장(4건), 8장(1건), 9장(3건), 10장(3건), 11장(2건), 12장(3건), 13장(3건), 14장(4건), 15장(1건), 16장(3건), 17장(1건), 18장(5건), 19장(1건), 20장(2건), 21장(1건), 22장(1건), 23장(1건), 에필로그(없음)

괄호 안의 숫자는 작가가 가운뎃점을 사용하여 강조한 단어와 문장을 챕터별로 센 개수입니다. 책장을 훌훌 넘기며 대강 훑은 것으로 작은따옴표와 느낌표를 사용하여 강조한 문장은 제외했습니다. 따라서 작가가 강조한 문장은 위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아집니다. 제가 읽은 로맨스 중에서 문장이 가장 많이 강조된 작품입니다.

장편소설은 짧게는 2시간, 길게는 며칠에 걸쳐 읽습니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반응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독자는 작가가 생각지도 않은(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긴장하며 숨을 죽이고 감동을 받습니다. 읽는 시간이 길수록 이런 경향은 두드러집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문장을 강조함으로써 독자 고유의 권한을 제한했습니다. 줄거리의 흐름을 끊고 나름의 독서 리듬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일깨워'지는 것입니다. '여기가 강조되었는데, 내가 잘못 읽었나? 어느 부분을 놓쳤지?' 그러면서 앞부분으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문장의 강조가 지나치면 불쾌감을 동반할 수 있으며 의문을 갖습니다. '이게 강조할 만큼 중요한 사건(대화)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작가의 의도대로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지칩니다. '이 작품이 원래 이렇게 숨이 찼던가?'

작가는 작품에서 감정을 고조시키고 문장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는 꼭 필요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장부호보다 플롯과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드러냄표를 이용한 문장의 강조는 제대로 조율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않으면 작품의 강약과 완급 조절에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 작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강조하여 강조하지 않은 것보다 더 못한 경우가 되었습니다(강조하지 않아도 독자는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 잘 찾아냅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렇게 많은 문장을 강조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원인을 알아내고 대안을 찾아보겠습니다. 근거가 되는 텍스트로 대중문학연구회에서 펴낸 《신문소설이란 무엇인가?》¹를 제시하겠습니다.

신문소설은 아주 빨리 쓰여졌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인 계획도 없이 다음 날짜 신문에 게재하기 위해서 하루하루 근근히 써대지는 않았다. 인기 신문소설가들은 바빴다. 독자들의 요구는 대단해서 한꺼번에 두 세 일간지에 연재를 할 때도 있었을 뿐 아니라 한 편이 끝나면 다음 작품을 구상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그 다음 작품을 연재해야만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연히 빠르게 써나갈 수밖에 없었다. 쉬 Sue같은 작가는 《빠리의 신비》를 연재하면서 그의 휴가를 반납하는 길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독자들의 성화에 자신의 휴가를 제대로 찾아 먹을 수가 없었다. 신문소설이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나오더라도 그들은 그 원고를 교정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그처럼 빨리 써야만 하는 데서 여러 결점이 불가피하게 나타나는데, 줄거리의 구성에 통일성이 결여되기도 하고, 인물들의 성격에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한 성찰이 천박해 깊이가 없으며, 잘 다듬어지지도 않아 진부한 표현이 많다. 빠른 글쓰기가 어떤 작가에게는 들어맞는 경우도 있어서 독자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하여 그 독자를 빠른 시일 안에 정복하는 장점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시간적인 이유로 인해 모든 면에서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쌩뜨-뵈브가 신문소설을 조소적으로, '산업화한 문학'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은 신문소설의 바로 그러한 조잡성 때문이기도 했다.

신문소설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들의 개입이다. 심한 경우에는, 그러한 개입이 연재중인 소설의 진로를 변화시키기까지 한다. 독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희망대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를 바라면서 신문사 사장이나 작가에게 편지를 쓴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외설적이거나 비도덕적일 때는 호된 비판과 간섭을 받기도 한다. 신문사 사장은 신문의 발행부수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받기에 그러한 의견을 수렴하여 어떤 식으로든 작가에게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들도 그러한 요구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미 문학도 자본주의 순환 논리에 편입된 이상 소비자의 취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학 취향에 따라 작품을 창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작가들은 그 문제에 있어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어떻든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는 문학 생산은 큰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 그들은 살고 있었다.

- 김중현 《프랑스의 신문소설 - 7월 왕정기를 중심으로》 -

연재의 폐해를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시간부족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 - 줄거리의 구성에 통일성이 결여, 인물들의 성격에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 깊이가 없으며 진부한 표현이 많다 - 과 독자의 개입, 소비자의 취향에 따른 작가의 딜레마까지도.

이미 말했듯이 신문소설에서는 1회마다 절정을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잃으면 안 된다. 그 때문에 전체의 골격으로서 줄거리의 구성과, 그 부분의 장면 구성을 매회 이어가는 계속적인 의식 - 독자가 앞으로 기대할 수 있도록 하는 수법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독특한 기술을 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아사이 키요시 《소오세키와 신문소설》 -

신문소설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꼽고 있습니다. 첫째, 매회마다 절정을 이루어야 한다. 둘째,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셋째, 독자에게 기대감을 주어야 한다.

1839년부터 어떤 작가들은 소설 작품들을 연재로 간행함으로써 생겨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특히 그토록 까다로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 이야기 끊기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했고, 그것을 이용하여 계속적인 관심을 끌면서 흥미를 배가시키려고 애썼다. 그들은 이른바 '서스펜스'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 중략 -

신문 소설 기법의 특이한 제1의 양상은 이야기 끊기의 중요성이다. 흥미를 잃게 할 위험이 있는 분할이 안고 있는 위험에 일시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소설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신문소설의 결말 부분에 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다음에는 독자를 계속 궁금하게 만들기 위해 그것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서 굳이 힘주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강조해 둘 것은 1842년부터는 《르 나쇼날 Le National》지에 연재된 루이 레보 Louis Reybaud의 《사회적 지위를 모색하는 제롬 빠뛰로 Jerome Paturot a la recherche d'une position sociale》라는 소설에서 그에 대한 풍자를 할 만큼 초점이 맞추어지고 일반화했다는 것이다. 제롬 빠뛰로는 신문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 신문사 사장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선생, 신문소설가의 진면목은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자르는 데 있소. 매회마다 잘 맞아 떨어져야 하고, 일종의 탯줄처럼 다음 회와 이어져 있어야 하며, 마음을 끌어야 하고,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은 욕망에 못 견디도록 만들어야 하오. 당신은 조금 전에 기법에 대해 이야기했었소. 바로 이것이 기법이오. 이것이 바라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기법이란 말이오.

선생은 선생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르뛰르 Arthur라는 인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의 품행 가운데 어느 것도 흔들리지 않고, 결과를 위해 상실되지 않도록 하는 방식으로 그 인물을 조종해 나가십시오. 매회 연재분마다 끝부분에는 비판적 상황에 수수께끼같은 단어, 그리고 아르뛰르, 언제나 끝에는 아르뛰르가 있어야 합니다! 대중이 선생의 아르뛰르를 비난하면 할수록 선생은 더욱더 거기에서 해결책을 끌어내서 그것을 대중에게 미끼로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경우에, 좋아하는 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인가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속에 체납자들을 남겨 놓음으로써 선생이 그 아르뛰르를 정기 구독 갱신 기간에 걸쳐놓을 수 있다면, 선생은 선생처럼 품격이 높은 사람이 바랄 수 있는 기법의 가장 훌륭한 성공을 실현한 것입니다."

- 중략 -

이 이야기 끊기의 기법을 발자크는 전혀 사용할 줄 몰랐다.

- 중략 -

그의 원고의 초고는 조금 치의 단절도 없이 단 한 번에 쓰인 것이다. 장(章)의 구분과 제목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의 교정쇄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그 때에 발자크는 신문소설의 길이에 따라 절단해야 하는 가장 적절한 장소를 찾는다. 그의 선택은 신문소설의 관점에 따라 조정되는데, 그것은 단행본으로 출판하기 위한 장의 구분이 연재로 간행할 때의 구분과 일치하지 않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 르네 기즈의《발자크와 신문소설》에서 발췌 -

적절한 장면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끊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고 있는 위의 글에 어울리는 부제(sub title)는 《머리 쥐어뜯는 발자크》입니다. 소설을 집필하면서 '정기 구독 갱신'을 염두에 두어야 하다니.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족쇄를 채우고도 남을 일입니다. "이야기 끊기의 기법을 전혀 사용할 줄 몰랐던" 발자크는 신문에 연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면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합니다.

(신문에 연재된)작품이 책으로 출판되어 서점에 나오도록 맞추어 주기 위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작업을 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1837년 10월에 이렇게 쓰고 있다. "…… 나는 《여상사》의 서문을 여성복의 장식깃의 형태로, 제4부는 치마의 허리 받침의 형태로 꿰매야 합니다. 왜냐하면 《라 프레스》지의 일흔 다섯 개의 종단기사난을 책으로 만들면 적은 분량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처럼 깁는 일과 덧칠하는 일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나중에 하는 이 일들로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 발자크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 Lettres a Madmame Hanska》1편 412 p. 1837년 10월 12일자 -

끊어놓은 것을 이어 붙이는 것도 발자크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인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누나와 나, 혹은 그녀석과 나》에서 많은 단어와 문장이 강조된 이유는 '연재' - 정확히는 '인터넷 연재' - 에 있습니다. 위의 예에서 살펴봤듯이 소설의 연재에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까봐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1. 줄거리와 인물들의 성격에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2. 작품에 깊이가 있어야 한다.

3. 문장에 참신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4. 독자의 개입(소비자의 취향)에 따른 작가의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5. 매회마다 절정을 이루어야 한다.

6. 독자에게 기대감을 주어야 한다.

7. 적절한 장면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끊어야 한다.

8. 연재를 단행본으로 출판할 때 작품의 일부를 수정해야 한다.

인터넷 연재가 신문 연재보다 분량과 시기(時期)면에서 자유롭기는 하지만 중간에 끊어지는 연재인 이상 위에 언급한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연재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두 가지를 찾았습니다.

첫째,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그 후 두 시간도 못 가서 진짜 비극이 다가올 거라는 것도 모른 채 연수와 선우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때 그녀를 그렇게 혼자 보낸 것을 훗날 선우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정말 벽에 머리를 들이박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대부분의 살아 있는 인간이 그러하듯이, 앞날을 내다보는 초능력 따위 없는 선우와 연수로서는 그때 다가올 악몽 따윈 알 수가 없었다. 인간이니까.

- 중략 -

훗날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참담한 어조로 이렇게 고백했다.

"내 인생에서 저지른 것 중 가장 멍청한 실수였어!"

하지만 그것은 훗날의 이야기고 어쨌든 이시형은 연수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리고는 그녀를 찾아 떠났다. 재빠르게.

- 본문 중에서 -

국내 로맨스²에서 자주 보여지는 패턴으로, 구자영의 《내 아내는 보스》에서 쌍둥이의 미래를 언급한 부분도 해당됩니다. 연재시 잘리는 부분이라 흥미를 끌기 위해 사용한 것 같은데, 단행본으로 나을 경우 몇 장 뒤에 발생할 일을 이런 식으로 미리 알려주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쿤츠 또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의 : 얘기가 진행되는 동안 일어나는 사건들을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 말해 주는 투로 예고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랠프가 수요일에 배반할 것을 베키가 미리 짐작했더라면 베키가 화요일밤 저녁 식사 때에 그 중요한 비밀을 랠프한테 털어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보다 더 나쁜 문장은 "섣달 그믐날 밤에 춤추고 웃으며 샴페인을 마시면서도 폴리는 자기의 목숨이 정월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는 식의 표현이다.

- 딘 쿤츠 《베스트 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 (원제: How to write bestselling fiction)》 문학사상사, 1996. 100 p. -

둘째, 드러냄표를 이용한 문장 강조의 남용

매회 절정을 이루려면 연재될 때마다 눈에 띄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 연재시 작가는 단어나 문장을 강조하여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행본으로 다시 나올 경우 반드시 수정해주어야 합니다.

몇 가지 대안이 있습니다.

첫째, 인터넷으로 연재된 작품을 단행본으로 수정할 경우,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수정할 것.

--> 인터넷에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감동을 주었다고 해서 단행본에서 같은 효과를 발휘하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오히려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인터넷 연재를 하지 않고 처음부터 장편으로 집필할 것.

이 초고 - 스토리만 있는 원고 - 는 누구의 도움도 (또는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써야 한다. 간혹 집필중인 원고를 가까운 친구에게 (흔히 한 침대를 쓰는 친구가 제일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다)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작품이 자랑스럽거나 혹은 미심쩍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충동을 억누르라고 충고하겠다. 긴박감을 계속 유지하라. 자기 작품을 '바깥 세상'의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의견을 듣게 되면 - 불신의 말이든 칭찬이든 호의적인 질문이든 간에 - 긴박감이 줄어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성공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품은 채 계속 나아가라. 작품을 끝마치고 나면 자랑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웬만하면 초고를 완성한 뒤에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 방금 눈이 내린 들판처럼 작품 속에 오직 자신의 발자국만 찍혀 있을 때 좀더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 중략 -

이제 여러분이 초고를 완성했다고 가정해보자.

- 중략 -

작품을 얼마나 오랫동안 묵히느냐 - 이것은 빵 반죽을 대충 주무른 뒤에 한동안 놓아두는 것과 비슷하다 - 하는 문제는 순전히 여러분 자신이 판단해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6주는 필요하다고 본다.

- 중략 -

그리하여 어느 적당한 날 (미리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두는 것도 좋겠다) 저녁에 비로소 서랍 속에서 원고를 꺼낸다. 이때 그 원고가 어느 고물상에서 구입한 골동품처럼 낯설어 보인다면 정말 준비가 된 것이다.

- 중략 -

그 동안 6주의 회복기를 가졌으니 이제 플롯이나 등장 인물의 성격에서 명백한 허점들을 발견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해졌을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것은 트럭도 지나갈 만큼 크나큰 구멍들이다. 작가들이 한창 글을 쓰는 동안에는 그런 것들을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참으로 놀라울 지경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원제: On writing)》 김영사, 2002. 258-262 p. -

--> 스티븐 킹은 이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글을 남겼습니다. 처음부터 장편으로 집필하는 것은 독자의 반응을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독자의 개입에 따른 문제를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에서 한 번 읽었던 작품을 단행본으로 다시 읽게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 - 지루하다, 수정되지 않았다 - 를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초보작가³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입니다.

셋째, 작가의 개성이 작품에 들어있어야 한다.

--> 로맨스라는 장르의 특성상 주제가 일치하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소재와 등장인물까지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인터넷 연재를 할 경우, 독자의 반응에 따라 작품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으며 대중적인 통일성을 띠게 됩니다. 대중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이며 사장될 위험이 그만큼 높습니다.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것을 확실히 갖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1.《신문소설이란 무엇인가?》: 1996년 국학자료원에서 출판한 《대중문학연구》2집입니다. 원칙적으로 인터넷 연재를 다룬 책을 텍스트로 삼아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문학비평서가 '문화와 인테넷' 혹은 '인터넷 게시판과 문화'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연재'에 무게중심을 둔 비평서로 이 책이 유일하므로 매체가 다르지만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주2. 국내 로맨스 : 정확히는 인터넷에 연재된 작품이 단행본으로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주3. 초보작가 : 베테랑 작가들은 작품의 발표 방법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박경리의 《토지》와 야마오까 소하찌의 《대망 (원제: 도쿠가와 이에야스)》또한 연재 소설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과 나의 4321일(눈과마음, 2003)

혜찬 - 깨어나 보니 얼굴은 멀끔한 남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더군요.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깨운 왕자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나도 알다시피 난 공주도 아니고, 그 남자도 왕자는 아니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아저씨,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 그 남자가 입을 딱 벌리고 나를 무지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내 남편이라나요? 그리고 열여덟, 꽃 같은 내가 스물아홉 아줌마래요! 지금이 1993년도가 아니라 2003년도라구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아니, 그게 말이 돼요? 그런데 문제는 그 황당한 말이 사실인 것 같아 보인다는 거예요. 우이이잉,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상영 - 기가 막힌 건 나라구!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싫다고 내 이름도 까먹고 싶다던 마누라가,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 내 이름을 까먹어 버렸단 말이야! 그것도 모자라서 나랑 동갑인 주제에 뭐? 나보고 아저씨라고? 그 주제에 자신을 열여덟 꽃띠로 착각하고 있는 왕내숭 같으니, 오냐. 유혜찬. 니가 감히 이 강상영을 잊어버려? 좋아, 좋아구. 어쨌거나 넌 나를 싫어했던 것도 까먹었으니까 어디 싫은 남자 옆에서 쪼글쪼글 할머니나 되어버려라!

아, 그런데 이 여자, 왜 이 지경에 와서도 이렇게 귀여운 거야?

모래성의 푸른달 (눈과마음, 2002)

그 여자, 미사녀… 신(神)에게 선택된 순결한 처녀. 오로지 신만을 위해 살 뿐 그 누구도 사랑해선 안 되었던 그녀가 '만월의 밤', 사랑의 축제에 나서면서 그들의 운명은 시작되었다.

그 남자, 은파사… '검은 악마'라 불리는 냉혹하고 아름다운 파륜의 왕. 자신을 방해한다면 신까지도 죽여버리겠다던 그의 눈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달처럼 순결한 신의 딸. 그래서 보고만 있으면 이상스레 화가 나지만 안고 싶은 바로 그 여자가.

쾌락의 축제가 끝나고 전쟁이 시작된 그날. 남자는 사랑을 해선 안 되는 그 여자 앞에 무릎을 꿇는데…….

"미사녀, 신(神)이 떠난 신녀(神女)여! 그대의 만월의 상대로서 청컨데……."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표정의 원로원 원로들과 귀족들. 신녀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왕의 정혼녀라 알려진 아리수와 그녀의 오라비 무유사도 있었다. 그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미사녀에게 그 남자 은파사는 말했다.

"나와 결혼해 주시오!"

review:

신을 모시는 신녀가 주인공임을 알았을 때 어떤 기대가 있었습니다. 신성하고 근엄한 것, 손대지 못할 귀중한 것,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진행되는 플롯. 그러나 기대는 깨져 실망만을 안겨주었습니다. 작품에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는 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남주에게는 쓰레기보다 못한 존재, 여주에게는 생의 전부를 헌신했지만 순결 상실과 더불어 딸의 자격을 잃게 만드는 무정한 존재입니다. 이름도 없이 '신'으로 불리는 이것은 예언과 치유의 힘을 가졌지만 깊은 사유 없이 미숙하고 가볍게 묘사되어 스스로의 존재를 우습게 만들었습니다. "왕에게도 고개숙이지 않는 대신녀"라는 묘사는 신 앞에서 왕과 마찬가지의 권위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신궁에 대한 짤막한 묘사와 여주를 따르는 단 한 명의 후계자에 대한 언급으로 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입니다. 에피소드만으로 이루어진 중편으로 줄이던지 아니면 신화와 서사에 어울리는 아주 긴 장편으로 늘이던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분량에 여러 가지를 포함시키니 깊이 있는 성찰이 되지 못하고 껍데기만 건드린 꼴입니다.

"흥, 왕이라는 그 흉악무도한 작자가 오든 말든 알 게 뭐람. 차라리 감사기도 따윈 오지 않는 게 좋아. 그 자는 사실 신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살인마라고!"

- 중략 -

자신이 모시는 젊은 왕이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실천하고야 마는 '개 같은 성질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재상은 알고 있었다.

--> 대화와 묘사에 품위가 없습니다. 그래도 왕과 대신녀와 신이 등장하는데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켰으면 좋았을 것을…….

여기저기서 따온 듯한 대화와 묘사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원로회의 원로들과 신녀, 유력한 귀족, 장군들까지 소집해서 떠들어야 할 중대사안을 결정하는 이른바 '원탁의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 원로회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원탁의 방은 《원탁의 기사》에 등장합니다.

"당신을 죽일 수는 없겠지만 내 목 정도는 충분히 벨 수 있어요!"

--> 《불의 검》에서 아라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류도 있습니다.

상황 1. 그는 축제 후 보름 동안 자신이 이제껏 살아 왔던 그대로 지금처럼 활을 쏘고, 사냥을 하고, 달콤한 포도주를 마시고 다음 전쟁을 위해 자신의 검(劍)을 닦았다.

상황 2. 왕으로서 신녀를 맞으러 가는 것뿐이다. 정말로 그뿐이다. 라고, 내 심장의 주인, 만월의 밤을 함께 보낸 만월의 상대가 아닌 그저 신녀를.

상황 3. "오늘 밤 저를 안으세요. 달은 또 떠올랐고 그날과 똑같은 만월의 밤이잖아요?"

위의 상황들은 모두 한 날(One day)에 이루어집니다. 상황 1은 맨 처음 사건이 일어난 후 15일이 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 2는 처음 사건이 만월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 3에서는 두 번째 만월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달이 차고 다시 차는데 보름밖에 걸리지 않다니! 만월에서 15일이 지나면 그믐인데, 어떻게 만월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파륜국은 가상국가라 한 달이 15일인가?

PS: 오타입니다.

"누군가 신께 공물로 바치는 거겠지. 호미을(--> 호미를) 이리 다오."

별처럼 반짝이다(눈과마음, 2003)

준희 - 그녀는 며칠 전 딱 스물여덟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스무 살 때부터 사랑해왔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와 결혼을 했고 처음 다섯 달은 '행복'이라는 표현에 딱 맞게 살았답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와 '이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싫다고 했고, 그래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그가 그러겠다고 할 때까지 그를 떠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전에 그녀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어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스물여덟의 그녀는 그 말을 지구상에서 가장 가슴 사무치게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서 - 그는 얼마 안 있으면 딱 서른 살이 됩니다. 그는 스물두 살 때부터 사랑해왔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란 소리는 다 들려주고 싶고, 그녀가 예쁜 할머니가 되어 자신 옆에서 늙기를 희망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던 그녀가 지금 많이 아픕니다. 그리고 그에게 헤어져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녀가 아픈 게 슬프고, 나랑 같이 있으면 더 불행하다는 그녀의 야속한 말에 화가 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니,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타이판의 여자(눈과마음, 2003)

은조 - 나를 사랑하지 마세요! 당신은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나는 사랑에 목이 마르다. 그래서 사랑할 사람을 내가 선택하고, 그 사랑을 지켜 나가고 싶어. 난 이미 세상 끝까지라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런데 왜 그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가 내게 청혼하는 거야?

루 - 너를 사랑하든 하지 않든 그걸 결정하는 건 나야! 누구도 내 마음에 명령할 수 없어!

나는 사랑을 소유하고 싶다. 홍콩의 4분지 1이 내 소유다. 내가 마음대로 못하는 것은 없었어. 눈앞의 이 자그마한 여자를 빼고는. 그녀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한 그 순간부터 나는 저 여자가 지독히도 탐이 나기 시작했다.

요시로우 - 한 번도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너 없이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나는 사랑이 두렵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이렇게 끔찍하게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당신 없이도 살 수 있을 줄 알고 당신을 보냈어, 이렇게 끔찍하게 사랑해선 안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사랑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

시엔 - 내가 원하는 게 뭐냐오? 난 당신이 불행해지길 원해!

나는 사랑을 증오한다.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게 상처 입힌 그 남자를 증오해! 그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난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어! 설사 그 복수에 나 자신까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