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정

초련 (세림, 2003)

기분 좋은 날이었지.

코끝을 짭조롬하게 스치던 희미한 바다 바란 너머의 초저녁.

이르게 불을 밝힌 가로등 아래로 반겨 맞이하는 친구에게 아직은 마주 손 흔들어 보일 정도로 여유가 있던 신선한 초가을이었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고 싶어질 만큼 편안한 추억으로 자리잡은 곳을 향하며 나는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만 생각했었던 것 같아.

철없던 학창시절을 회상할 때면 의당 그렇듯 작은 설레임과 그 만큼의 겸연쩍음으로, 그녀가 여기에 있다고…….

과거라 이름 붙인 지난 감정을 바랜 사진 조각처럼 꺼내어 보며 웃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어.

그래. 아주 잠깐동안 스치던 생각이었지.

과거는 이미 나의 19살 위를 스쳐 자취조차 없이 사라졌을 거라고, 그래서 그건 그냥 추억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