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

결혼, 살아보고 할까요? = shall we get married after living together? (여우, 2003)

관계의 본질에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불안해지던 시간은, 하나됨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던 것인지 모른다. 민재에게서 들은 말 한 마디에, 혜린이란 여자에게서 겪은 수모에 정신을 잃었던 것 그들 때문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으리라. 겪을 땐 너무 아파서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이었지만 어느 덧 그 시간들이 가져다 준 유익이 무엇이었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한 사람의 가슴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의 가슴에 박힌 잔가시들을 뽑아내는 피흘림 뒤에, ‘우리’라는 하나가 아니면서 동시에 둘은 더욱 아닌, 관계를 위해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라는 것을. 진짜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발견하며 함께 머리와 마음을 맞대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는 사이 그는 정말 한 여자를 위해 존재하는 남자가 되어 가는 것이며, 나라는 여자는 그라는 한 남자를 위해 존재하는 여자가 되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고양이와 개에 대한 보고서(자음과모음, 2003)

큰 소리 한번 안 내고, 화 한번 안 내고, 명쾌하게 끝을 말하는 너는 누구니?

시작하는 선을 찾기 위해 밤마다 잠을 설치는 나란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는 너는…

그대, 상처에 새살이 돋는 소리(이가서, 2003)

흙탕물에 피어나는 연꽃처럼, 사랑도 상처를 보듬고 피어날 때 더 찬연한가? 성불구자인 전남편의 가학적인 폭력까지 고스란히 견뎌내며 살아야 했던 유지은과 그녀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이며 나타난 남동생의 친구 전재현. 이제 제현은 다시 만난 옛사랑의 상처를 감싸 안으며 치열하고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지은에게 아낌없이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치부를 들킬 수 없는 전남편과 언론으로 상징되는 보수적인 사회는 이들의 사랑을 어렵게 만드는데…….

집착(이가서, 2004)

“날 부인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거...

결국은 자기 자신한테 죄를 짓는 거잖아.

내가 없는데 어떻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겠어?

헌신이니 희생이니 하는 건 날 사랑하는 만큼 누군가를 돌보고 위하는 거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준까지도 망가뜨려 가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건 아냐.

예전의 맛있는 게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태경 오빠에게 주려고 애를 썼거든.

그런데 지금의 난 일단 내 배부터 챙겨."

하프타임(자음과모음, 2003)

“우린 친구잖아!”

어깨를 툭 건드리며 호탕하게 웃어젖히고 돌아서는 너를 보며 가슴 한 구석이 풀썩 주저앉는 순간, 깨달았어. 너의 넓은 어깨가 공허해 보였다면, 나의 착각일까. 너를 향한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날 때마다 애써 모른 척해왔다는 걸 너는 아니?